정신질환자 범죄, 대책은 없고 편견만 키워…"가족→국가 책임으로"

강승지 기자 천선휴 기자 2023. 8.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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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명 중 1명 정신장애 경험…보호의무자 제도에만 의존 말아야
국가가 책임져야…정부 올 하반기 국민 정신건강 종합대책 발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잇따른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한 정신장애인 가족 단체 및 학회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및 (준)사법입원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2023.8.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천선휴 기자 = 최근 중증 정신질환자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치료·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문턱을 낮추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관리를 강화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단언했지만 사실상 미봉책만 내놓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예산과 전문인력 미비 등을 이유로 환자의 보호·관리 책임을 사실상 가족들에게 떠넘겨왔다.

전문가들과 환자 가족들은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대책을 마련하고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환자 가족들 "우리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정신질환 전문가들과 환자 가족들은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와 보호에 정부의 역할이 미미했다며, 더욱 책임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자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보호의무자 제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중증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9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송부터 치료까지 모든 것을 떠넘기지 말고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달라"며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및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을 사법기관이 정하는 사법입원제 제안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입원시키려면 우리나라에서는 2명 이상의 보호자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또 가족인 보호의무자가 1차 책임자다.

자·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경찰, 소방이 의료기관까지 책임지고 이송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응급입원 규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격리 조치를 할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홍나래 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자는 망상이나 환각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치료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현재로선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더라도 현저한 자해·타해가 있어야만 입원을 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회의 오강섭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의 비자의 입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 조항의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경찰에 의한 병원 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전문가 "한국,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 투자 1.6% 불과…태부족"

10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올 초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21년 조사 대상(만 19~79세) 중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를 앓은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은 27.8%로 성인 인구 3~4명 중 1명에 달했다.

정신장애 진단 도구를 통해, 평생 한 번이라도 정신장애를 진단받은 적 있는 사람 중 정신건강전문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의사,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간호사)와 상담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은 12.1%에 머물렀다.

치매를 제외한 중증 정신질환자 중 퇴원 후 1개월 안에 정신과 외래진료를 받은 사람 비율은 63.3%로, 나머지 36.7%는 증상이 중증이어도 외래 진료를 받지 않는 등 환자 사후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에 비해 관련 예산과 인력은 부족한 모습이다. 2021년 전 국민 정신건강 예산은 3694억1144만원으로, 국내 인구 1인당 정신건강 예산은 7139원이다. 또한 인구 10만명당 정신건강전문인력 수는 18.9명이었다.

이병철 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의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 투자 비율(2021년 기준)은 OECD 평균 5.4%의 3분의 1이 안 되는 1.6%고 선진국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투자가 부족한데 환자의 인권과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1년 기준 전국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1813명으로 2018년 50만9056명보다 8만여명 늘었다. 그중 조현병 환자는 18만9878명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의 28%를 차지했다.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는 누군가 자신을 욕하거나 해치려 한다는 환청에 휩싸여, 피해망상 또는 관계망상 등의 증상을 보인다. 환각과 망상에 빠지면 공격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반대로 매우 위축되고 공포에 빠져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율로 치면 후자(위축, 공포)의 환자가 훨씬 많은데 심각한 사건 사고들이 소개돼 환자들이 굉장히 위험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으나 그런 환자들은 전체의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김창협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고, 누구한테나 올 수 있다는 질병으로 생각한다면 병원에 가고 약 먹는 게 당연하며 입원도 할 텐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참고 숨기게 된다"며 "환자들에게 낙인은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도 현대인의 스트레스 지수가 늘어난 점을 고려, 정신건강 관리대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정부에 '국민 정신건강 서비스 혁신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보건복지부 등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올해 안에 관련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전 국민 정신건강 검진을 개편하며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어린이들에게 간단한 검사를 통해 질병 전 단계를 파악·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만성질환과 유사한 환자 관리 사업을 구성하고, 정신의료기관 수가 현실화, 경제적 취약 환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부족했다. 입원 등 치료체계도 필요한 만큼 갖춰져 있지 않았다. '예방-치료-재활-회복'에 이르는 전 주기 인프라도 확충하고 환자 관리체계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 차관은 "올 하반기 대통령과 국민께 보고드리겠다.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수가 단순확대, 심리상담 확대 차원을 넘어 큰 그림의 대책을 준비 중"이라면서 "법무부와는 입원제도 전반, 치료 실효성 제고를 위해 합동 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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