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우윳값 상승에 쏠린 시선… “이러다 해외 멸균유 수입사로 전락”

연지연 기자 2023. 8.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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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상 자제 부탁에도 어쩔 수 없다는 유업계
정부가 지원 카드 꺼냈지만 신통찮은 반응 많아
“이대로면 신선우유 사업 쉽지 않다”는 우려 커진 탓

“전부가 아닌 일부 보전으로는 우유 가격을 잡아두기 어려울 겁니다.”

정부가 오는 10월 유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는 유가공 회사에게 가공유 구입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얼마나 지원해 줄지 미지수지만 유가공 업체의 입장은 상당히 강경합니다. 전부가 아닌 일부만 보전해준다면 우윳값을 올릴 수 밖에 없다는 건데요. 우유 1리터 당 3000원이 넘는 시대가 곧 도래한다는 의미죠.

일러스트=손민균

정부가 세 번이나 물가 안정에 대한 노력을 함께 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도 유업계가 우윳값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배경엔 공포감이 있습니다.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유업계의 판단입니다.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무관세로 해외 유제품이 들어오면 결국은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지 고민하는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소비자들이 신선우유 소비를 줄이고 멸균우유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간 소비자들은 멸균우유보다는 신선우유를 선호했습니다. 멸균우유는 실온에 보관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신선유보다 영양분이 떨어질 것이란 오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선우윳값이 3000원을 넘어서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유업계의 전망입니다. 일부 그런 조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통 대형마트 3사(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에 따르면 7월 기준 수입산 멸균우유의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배 가량 늘었습니다.

데이터 기반 리서치 기업 메타서베이가 10대~70대 남녀 소비자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멸균우유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싼 가격 때문에 흰 우유 대신 멸균우유를 구매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65.8%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산 멸균유의 가격 경쟁력도 수입 멸균유 대비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유업계에서는 신선우유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마음이 멸균유로 돌아서면 해외에서 들여온 멸균유 업에게 순식간에 자리를 뺏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중에서 판매하는 폴란드 멸균우유는 리터당 1400원~1700원 수준입니다. 수입업자는 이 멸균유를 1150원에 사오기 때문에 이 가격에 팔아도 10~15%의 이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산 멸균우유 값은 할인을 거듭해서 겨우 1780원을 맞출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마저도 이윤을 포기하고 손해를 보고 파는 가격입니다.

유업계 관계자는 “멸균우유도 신선우유와 똑같이 낙농가에서 원유를 사용하는 것이라 공정을 거치고 이윤을 붙여 팔면 지금과 같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지금은 설비 유지 등을 위해 손해를 보면서도 일부 생산하고 있는 것인데 값싼 해외 멸균우유가 들어오고 소비자 선택이 그리로 넘어가면 사업 모델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업계에서는 낙농가와 상생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두 가지가 고쳐지지 않으면 사업 전망이 어둡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꼽은 것은 바로 원유 쿼터제입니다. 원유 쿼터제는 유가공업체가 낙농가에서 정해진 양의 원유를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인해 유업계는 구매를 탄력적으로 조율하지 못해 경영 비효율이 커지고 있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유업계의 고통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낙농업계의 비용을 전부 보전해주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국산 우유가 해외 대비 유독 비싼 점은 농가의 생산 비용을 보전해주는 원유가격 연동제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대농장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국내 낙농가가 영세하기 때문에 원래 생산단가가 높은데 정부기 비용까지 지원해주니 생산 비용을 낮추는 노력은 전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고 있죠.

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소비자들이 국산 우유를 선택해줬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가격 문제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고 해외 멸균유 등이 대세가 되는 시장이 된다면 결국 유업계는 해외 멸균 수입업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해외 멸균 우유는 수입 통관기간을 감안해 국내 멸균유보다 소비기한이 길 수 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침전물이 생기고 지방이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어서입니다.

전문가들도 유업계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놓고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낙농가의 어려움을 도외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대로면 답이 없다는 게 솔직한 입장이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매일유업은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인건비 감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2020년 이후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울우유의 상황도 녹록치는 않습니다.

밀크플레이션이 화두인 요즘, 근본적인 고민에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내산 신선유 대신 해외에서 들여온 멸균유로 대체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죠. 낙농가의 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유업계와의 상생 방안을 제대로 검토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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