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가 수차례 학살에도 살아남았던 새만금 갯벌 조개들을 죽였다
잼버리 위해 수위 낮춰 해수 막은 뒤
폭염에 고개 내민 맛조개 말라 죽어
환경단체 “해수 늘려 갯벌 복원해야”
안방 드나들듯 전북 군산 ‘수라갯벌’을 찾아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승준씨(23)는 지난 5일 갯벌을 살펴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갯벌 표면은 부쩍 말라 있었다. 하루 최대 두 차례 들어오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숨구멍 위로 올라온 맛조개들도 목격됐다. 오씨는 지난 7~8년 동안 수라갯벌에서 맛조개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겨울에야 새들이 먹고 남긴 맛조개 껍데기를 보고 ‘맛조개가 돌아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오씨가 마주해야 했던 맛조개는 ‘죽어가는 또는 죽은’ 맛조개였다.
지난 5일 ‘수라와 갯지렁이들’은 수라갯벌에서 저서생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수라와 갯지렁이들’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수라갯벌을 지키고 싶은 시민들이 모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 인문 실험 공모전’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프로젝트팀이다.
‘말라서 죽은’ 조개들
현장 조사는 새만금 남북도로 군산 구간 인근의 갯벌에서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도로를 따라 약 500m 정도를 이동하면서 조사를 실시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방조제 내 남수라마을 인근 갯벌과 연안 습지를 ‘수라갯벌’이라고 부른다. 수라갯벌은 방조제를 통해 하루 최대 두 차례 해수 유입이 이뤄지면서 염생생물들이 사는 곳이다. 새만금에 ‘마지막으로 남은 갯벌’로도 알려져 있다.
조사 결과 맛조개 수십 개체가 ‘말라서’ 죽은 모습이 발견됐다. 조사팀이 발견한 폐사체에는 조개류 6종(맛조개, 종밋, 돌고부지, 재첩, 지중해담치, 쇄방사늑조개), 게 1종(칠게)이 포함돼 있다. 조개는 갯벌 속 깊숙이 들어가 버틸 수 있는 게보다 취약하다.
길이 5~7㎝ 정도의 맛조개가 ‘죽어가는’ 모습도 발견됐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갯벌 위로 맛조개가 1~3㎝ 정도 올라와 있었다. 오승준씨는 “맛조개 같은 조개들은 바닷물이 빠지면 펄 속에서 버티다가, 물이 다시 들어오면 나와서 먹이 활동을 하고 호흡을 한다”라며 “펄 속에서 버티다가 말라 죽기 직전에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견된 폐사체의 총 개수는 100여 개였다. 조사팀은 갯벌 밖으로 나와있어 눈에 잘 띄는 맛조개 폐사체 외에도 폐사한 작은 조개들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조사 구간이 도로 근처 500m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갯벌에서 폐사한 개체는 훨씬 많을 수 있다. 오씨는 “조사 때는 아직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조사 이후 폐사한 개체도 있을 것”이라며 “미처 조사하지 못한 갯벌이 훨씬 넓어, 피해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 문제 지적받은 잼버리, 수위 낮추자 죽어간 생물들
최근 대원들이 모두 퇴영한 전북 부안 2023 새만금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은 갯벌을 매립한 공간으로, ‘배수’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던 곳이다. 지난 24일에는 폭우가 내리며 대회장 부지가 진흙탕으로 변하기도 했다.
조사팀은 잼버리 등 이유로 새만금호측의 관리 수위가 낮아지면서 하루 최대 2차례 해수가 들어오던 수라 갯벌에 물이 들어오지 않기 시작한 게 집단 폐사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장마가 끝난 뒤 이어진 폭염도 갯벌이 더 빨리 건조해지게 한 원인이 됐다. 오씨는 “이렇게 장기간 갯벌이 마른 일은 최근 몇년간 없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 홈페이지를 보면 9일까지도 새만금 방조제 안쪽 새만금호측의 관리 수위는 -2m로 관리되고 있다. 기존 관리수위(-1.5m)에서 50㎝ 더 낮은 수치다. 지난달 새만금사업단 공지를 보면 “제25회 스카우트 잼버리 개최에 따른 하절기 호우 대비 대응의 일환으로 새만금 관리 수위를 7월3일부터 -1.7m, 18일부터는 -2m로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마 시기에는 수위가 상승한 상태였다.
새만금사업단은 애초 잼버리가 예정돼 있던 오는 12일까지 관리 수위를 -2m로 유지하고, 13일부터 수위를 다시 -1.5m로 올릴 계획이다.
해수 유통 따라 ‘죽어가는’ 생물들…반복된 역사
2023 새만금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은 새만금 간척사업 대상지 가운데 해창갯벌을 매립해 만들어진 부지다. 2003년 새만금 간척을 멈춰야 한다는 요구를 하며 환경-시민단체들이 삼보일배 순례를 시작했던 ‘갯벌 보존 운동’의 성지다. 지난 5~6일에는 이 일대에서 새만금 간척지 반대 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장승제 행사가 열렸다.
시민사회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학살’이라고 불러왔다. 갯벌에 살던 조개, 철새를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가 매립으로 인해 죽어간 탓이다. 오승준씨는 “이 문제는 수라갯벌만의 문제가 아니고, 새만금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고, 일어났던 일”이라며 “새만금 방조제 내 해수 유통을 늘려가야 더 많은 갯벌을 복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2120115000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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