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공천 학살” vs 친명계 “하명 혁신위 아냐”
친이재명(친명)계는 기득권 타파라는 명분이 있고, 혁신위가 의원 총회 의결로 결정된 사안인 만큼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비명계는 사실상 이재명 대표 체제 유지를 위한 것으로 '공천 학살' 의도까지 거론하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9일 뉴시스와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혁신위는 10일 공천룰 및 대의원제와 관련한 혁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3선 이상 중진 의원에 대해 공천 과정에서 페널티를 주는 등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약화하는 내용과 대의원제 폐지 또는 권한 축소를 놓고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룰과 대의원제는 내년 총선 및 차기 당권과 직결된 문제라 당내 화약고로 꼽힌다. 때문에 혁신안이 알려지자 계파 갈등은 폭발하고 있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이날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혁신위의 대의원제 및 공천룰 개정 검토에 대해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에 대해 사과하는 순간 해체 등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이 대표 입장에선 아직 개딸 영향력을 강화하고 공천제도를 손봐서 비명계를 학살하고 싶은 탓에 아무런 (사과) 표명을 안 하는 것"이라며 "비명계 공천 학살을 위한 밑그림"이라고 반발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중앙위원회 72%의 찬성으로 만들어진 공천룰이 있다. 원래 공천룰은 당헌상 1년 전 확정하도록 돼 있다"며 "확정이 된 것을 또다시 손보는 게 맞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공천룰을 자꾸 손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마도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학살 작업으로 보여진다"며 "이것이 수용 가능하려면 대의원제나 공천룰 등 때문에 당 지지도가 못 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의원제와 관련해서도 "지역안배 차원에서 도입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며 "지금은 수도권이 워낙 세졌다. 호남 출신마저도 최고위원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정도가 돼버렸다. 지역안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는데 당원 중심으로 간다면 앞으로 중심이 점점 강해진다"고 지적했다.
혁신위가 검토하고 있는 중진 의원에 대한 패널티안은 친명계 원외모임인 '더민주 혁신회의'가 제안한 안이기도 하다. 더민주혁신회의는 지난달 동일 지역구에서 3선 이상을 한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내년 총선 후보자 경선에서 득표율의 50%를 감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조직적 반발에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현역 의원 50%에 이르는 대대적인 물갈이만이 우리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친명계는 '친명 혁신위'가 아니라며 공천 학살 우려를 일축했다.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을 맡고 있는 김영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하명을 받고 혁신위가 혁신안을 제안하고 공천 학살을 진행하는 기제를 제공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며 "혁신위는 혁신위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두고 논의하고 제안한다. 누구의 무슨 하명 혁신은 아니지 않냐. 과도한 오해"라고 반박했다.
이어 "김은경 혁신위가 가지고 있는 상처도 있지만 국민들이 바라보는 민주당의 변화 열망, 요구는 김은경 혁신위의 상처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는다"며 "당 혁신의 내용들이 제안되면 합리적인 당내 논의를 통해서 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혁신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의 혁신의 내용 자체가 바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대의원제에 대한 부분들도 갑론을박이 있는 것"이라며 "혁신위 설치는 의원총회 의결로 결정된 사안으로 혁신위가 제안하는 당 혁신의 내용에 대해 당이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것도 의결했다. 여러 가지 논란이 됐지만 (혁신위가) 나름대로 출범했기 때문에 잘 마무리하고 끝내는 게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혁신안은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당 대표도 1표, 국회의원도 1표, 권리당원도 1표인 헌법상 보장된 평등선거를 해야 한다"며 대의원 권한 축소와 관련한 혁신안에 힘을 실었다.
반면 민주당 노동위원회는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가 파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홍배 전국노동위원장은 "지금의 민주당은 2011년 12월 16일에 당시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그리고 한국노총의 합당 선언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민주당과 한국노총의 항구적인 정책연대는 대의원제와 노동 권리당원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대의원제가 폐지될 경우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파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지도부는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계파 갈등이 고조되자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도 혁신안을 어느 수위까지 수용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지도부는 10일에 발표 예정인 혁신안에 대해 1차 판단을 내린 뒤 의원총회를 열어 전체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다음 주 정책의총이나, 28~29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전체 토론을 진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대의원제·공천룰 개정과 같이 당헌·당규를 수정해야 하는 사안은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 전 당원 투표 등도 거치게 된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혁신위 발표에 대해 당 지도부가 검토해 의견을 내고 세부적으로는 의원총회에서 논의하는 방식을 취했다"며 "10일 혁신안이 발표되면 지도부 내에서 논의가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앞서 지도부는 혁신위의 첫 쇄신안인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안'에 대해서도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라는 조건을 붙여 반발하는 의원들을 설득한 바 있다. 이번에도 지도부에서 미리 수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확대간부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 발표에 대해 "나오면 보시죠"라고 짧게 답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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