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문턱 닳도록 세계 누볐다…위기극복 '총대'[이재용 사면 1년②]
'JY 네트워크' 복원 가속해 로봇·AI·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협력 강화
(서울=뉴스1) 강태우 기자 =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지난해 8월 12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당시 부회장)이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결정된 직후 밝힌 소회다. 복권 1년을 맞는 이 회장은 전 세계를 누비며 "국민의 기대와 정부의 배려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적극 실천하는 모습이다.
사면으로 경영 활동의 족쇄가 풀리자 이 회장은 곧장 현장 경영에 나섰다. 작년 10월 27일 회장 자리에 오른 뒤에는 글로벌 '광폭 행보'에 더욱 속도를 붙였고, 지금도 국내외로 숨 가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이 회장이 복권 직후 쉴 새 없는 현장 경영 행보에 드라이브를 거는 데는 글로벌 경기침체 속 감지된 삼성의 위기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 의지가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10차례·12개국'. 작년 8월 중순 복권 이후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해외 출장일정이다. 비공식적인 일정까지 포함하면 1년 동안 지구 두 바퀴 이상의 거리를 이동했다.
경영 활동의 제약은 줄었지만 외부환경은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인플레이션, 반도체 한파의 영향으로 일부 사업들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해외로 동분서주하는 것은 위기극복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특히 현 사업을 재점검할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 먹거리와 기회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2월 이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바라카(Barakah)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았다. 바라카 원전은 삼성물산이 포함된 '팀 코리아' 컨소시엄이 진행하는 한국 최초의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다.
이 회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대변혁'을 추진 중인 중동은 기회의 땅"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자"고 주문하기도 했다.
UAE에서 귀국한 뒤 같은 달에 바로 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출장길에 올랐다. 이곳에선 베트남 삼성 R&D 센터를 포함한 동남아 주요 거점 사업장을 두루 살폈다. 올해 3월에는 3년 만에 중국 톈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사업장을 찾기도 했다.
이 회장은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엑스포 유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영국, 파나마, 멕시코를,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도 참석해 유치활동을 펼쳤다. 또 UAE, 일본, 미국, 스위스, 프랑스, 베트남 등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방문 경제사절단에도 참여했다.
잇따른 해외 출장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도 가속한다. 앞서 이 회장은 3월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비즈니스에서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5G 네트워크 장비 사업 대형 계약 체결이나 전장(자동차 전기·전자장치 부품) 등 신규 시장 진출 과정에는 항상 'JY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회장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팻 겔싱어 인텔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세계 기업인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반 자이드 UAE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등과도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권 직후 빌 게이츠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 손정의 회장을 만나 전략적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작년 11월엔 미래 신사업 협력을 위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피터 베닝크 ASML CEO,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 거물급 인사들을 연달아 회동했다.
이 회장이 신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바이오 분야에서도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바이오 벤처 인큐베이션 회사를 잇달아 만나며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 회장은 미국 동부에서 바이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호아킨 두아토 J&J(존슨앤드존슨) CEO △지오반니 카포리오 BMS CEO △누바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와 연쇄 회동하며 바이오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사업 발굴을 위한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자동차, 로봇, AI(인공지능) 분야에서도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나 미래 첨단산업 분야 협력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일식집에서 만났다. AI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다졌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 4분기부터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3를 공급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적 네트워크는 이재용 회장의 무기다. 기존에 알고 있는 업체 외에도 다양한 인사나 업체를 만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이 회장이 앞으로 경영해야 할 기간이 더 많이 남은 만큼 네트워크 및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 관계 강화를 위한 행보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burn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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