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투자' 입에 붙었다…"세상에 없는 기술" 화두[이재용 사면 1년①]
용인 팹 300조 붓고 TSMC 잡을 대규모 투자…파운드리 핵심기지 구상
(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듭시다."(2022년 8월19일 기흥 반도체 R&D 기공식)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냅니다."(2022년 10월27일 회장 취임사)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나흘 만에 찾은 곳은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이었다. 기흥은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시작된 상징적인 곳이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기흥 캠퍼스는 10만9000㎡(3만3000평) 규모로 반도체 R&D 단지로는 이미 세계 최대 수준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2025년 중순 연구개발용 반도체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2028년까지 R&D 단지 조성에 총 2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복권 후 첫 현장행보는 창업회장 반도체 정신 깃든 '기흥'
40년 전 이병철 창업회장은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을 지목하며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자연 조건에 맞으면서도 해외에서 필요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며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복권 후 기흥 캠퍼스를 첫 방문지로 정한 것도 40년 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기술'을 확보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의 복권 후 첫 메시지도 단연 '기술'이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국가 경제안보의 핵심 자산인 반도체에서 후발 주자와의 기술 초격차를 달성하기 위해 차세대 선행 기술 확보에 총력을 쏟겠다는 의지였다.
이 회장의 '기술'에 대한 관심은 이미 복권 전부터 엿볼 수 있다. 복권 두달 전인 지난해 6월18일, 열흘간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당시 이 회장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이 회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 독일 BMW 등 주요 고객·협력사를 만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인공지능, 6G, 로봇, SW(소프트웨어), 헬스케어 등에 불어닥친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려면 삼성이 차세대,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앞장서 내놓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 회장은 삼성 계열사 사업장을 찾아서도 미래 기술과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삼성 계열사 현장을 방문할 때도 이 회장의 관심은 '기술'로 향했다. 지난 2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았을 땐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라며 미래 핵심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열흘 뒤 삼성전자 천안·온양 사업장에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시 이 회장이 방문한 패키징과 디스플레이 공장은 10년 후 삼성전자가 글로벌 전자산업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확대해 나갈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대한 기술적 변곡점에 있는 분야다.
◇ 복권 후 과감해진 삼성…TSMC 추월 위한 300兆 투자
이 회장의 복권 이후 반도체 투자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과감해졌다. 지난 3월 삼성전자는 정부가 2042년까지 용인에 조성하는 710만㎡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의 기흥·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 클러스터에 팹을 만드는 것이다. 화성·기흥 벨트는 메모리·파운드리·R&D 중심, 평택과 용인은 첨단 메모리·파운드리의 핵심 기지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부족한 생산시설을 늘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를 추월하겠다는 목표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적 지원을 받는 기업들과 경쟁하는 삼성전자로서는 한 발 앞선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라며 "공격적인 투자와 인재 육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m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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