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현실인가? 현실이 게임인가?… 국립현대미술관 한복판에 드러누운 관객들

김청환 2023. 8. 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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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회’ 영상설치 ‘커터3’ 중심 누적 관객 24만여 명  
내가 있는 미술관이 게임에, 관객도 경험할 만한 일상 묘사 
CCTV에 찍힌 관람객이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 사실성 증폭 
현실 잊는 것 아닌, 인지하게 하는 게임… 실존 문제 질문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한복판의 열린 전시공간인 서울박스에 5월 12일 '게임사회'전 시작 전 김희천 작가의 영상설치 ‘커터3’(2023)가 전시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평일 대낮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1층 한복판에 관람객 20명이 바닥에 깔린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미술관 내 작은 광장 형태의 열린 전시 공간인 ‘서울박스’ 전시장 앞이 관람객으로 가득 찬 것이다. 관객들은 헤드폰을 쓴 채 반쯤 누운 자세로 정면 위를 응시했다. 가로 10m, 세로 14m 크기의 초대형 영상 설치물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었다. 벽 쪽에 서서 기다리던 이들은 소파에 자리가 비면 바로 가서 채웠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 오랜 논쟁거리를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5월부터 열린 ‘게임사회’전에 출품한 김희천 작가의 영상설치작 ‘커터3’(2023)가 화제다.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를 몰입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따르면, 지난 5월 12일 시작한 ‘게임사회’에는 ‘커터3’를 중심으로 관람객이 몰려 지난 7일 기준 누적 관람객 24만3,228명을 기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반기 6개 전시 중 최다 기록이다.


미술관서 ‘미로 찾기’, MMORPG 같은 몰입감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5월 12일부터 열린 '게임사회전'에 전시된 김희천 작가의 영상설치 ‘커터3’(2023)의 한 장면. 관람객 가운데 한 명의 얼굴을 폐쇄회로(CC)TV로 촬영해 3D 이미지로 변형한 뒤 게임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작품은 영상과 멀티미디어의 결합을 통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 주변환경, 인물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상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기술자로 설정된 영상 속 주인공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장면과 같이 보이는 가상공간 속 국립현대미술관을 마치 미로 찾기 하듯이 헤매면서 독백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실제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유니티(unity)란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미술관에 처음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낯선 공간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작품은 이를 관람객이 실제 있는 곳과 유사한 모습으로 가상공간에 구현함으로써 모호한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부 관객을 게임 속 캐릭터로 직접 등장시켜 사실성을 증폭한다. 소파 주변에 설치된 34대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특정 관객의 영상을 인공지능(AI) 기술인 인스턴트 너프(Instant NeRF) 기술로 2D에서 3D로 전환해, 이를 게임 캐릭터로 영상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뚜렷하게 특정인이 식별되지 않는 캐릭터의 모호성이 관심을 더 끌게 한다. 일방향적 감상에 그치는 기존 영상 설치와 차별화되는 셈이다.

특히 작가가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작품 설계에 공을 들인 점이 눈에 띈다. 게임 속 주인공이 자신의 집 위층에 사는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스마트폰의 전화번호가 노출되는데, 이 번호로 전화를 걸면 관람객이 낀 헤드폰을 통해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들려오며, 해당 번호로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게임에 실사 영상 오버랩… 단편영화 보는 듯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5월 12일부터 시작된 '게임사회'전에 전시된 김희천 작가의 영상설치 ‘커터3’(2023)에 등장하는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술자로 설정된 그는 '미로 찾기'와 같이 가상공간 속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물론 이같이 관객을 가상세계로 계속 몰아넣기만 한다면, 중독성이 특징인 기존 게임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중간에 앵무새를 얹고 있는 사람의 손 영상과 자신을 떠난 새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독백 음성 등 동영상을 담아 여백을 만들었다. 게임 영상과 실사 영상을 오가지만 한 편의 단편영화와 같은 흐름을 보이며 예술성도 놓치지 않았다. 한 줄기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 속 생각과 같은 서사구조로 사실성을 높이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40여 분 분량의 이같이 몰입도 높은 영상 설치물을 통해 작가는 결국 게임이 현실인지, 현실이 게임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실존의 문제를 꺼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평가받을 만한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의 독창성이다.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게임을 다룬 현대미술이 대부분 캐릭터성 애니메이션 시각 효과에 그쳤던 데 반해 김희천의 작품은 내러티브를 만들어 사실성을 높였다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이번 작품은 게임을 하며 현실을 잊거나 현실 감각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게임을 담고 있으며 그 서사성이 시적으로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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