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V자 반등 “내년 상반기에 회복”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일제히 신기술을 쏟아내는 가운데 반도체 업황 회복은 예상보다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당초 올 하반기(7~12월)에 ‘V자 반등’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이미 8월에 접어든 지금은 ‘내년 상반기’를 거론하고 있다.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다소 미뤄지고 있고, 회복 속도도 ‘V’가 아닌 완만한 ‘나이키’ 모양을 그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장밋빛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피터 베닝크 CEO는 최근 콘퍼런스콜(투자자 전화회의)에서 “1분기에 고객사들의 업황 회복 시점을 하반기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그 시점이 2024년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회복의 형태와 기울기 역시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첨단 EUV(극자외선) 장비 주문 역시 지연되고 있다고 ASML은 밝혔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의 웨이저자 CEO도 최근 “3분기에 접어들면서 AI 관련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지만, 전반적인 사업 사이클을 상쇄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며 “전반적인 거시 경제의 약세, 예상보다 더딘 중국 시장 회복, 완만한 시장 수요 때문에 고객들은 더 신중해졌고 4분기까지 재고 조절에 나설 움직임”이라고 했다.
하반기 반등을 일제히 예측했던 증권가에서도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DB금융투자 서승연 애널리스트는 “세트사들의 재고 조정은 3분기 중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글로벌 경기 회복 강도가 높지 않은 탓에 하반기 IT 성수기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메모리 공급사들은 3분기 현재 영업 환경이 쉽지 않은 데다, 모바일 수요 회복이 나타나지 않으면 연내 정상 재고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현재 반도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릿고개’도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평균 고정 거래 가격(1.34달러)은 전월 대비 1.47% 내려갔다. 지난 4월 20% 가까이 하락한 것에 비하면 하락 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반등 신호로 보기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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