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벨라루스 접경지 긴장 고조… 동유럽 확전되나
러시아의 맹방 벨라루스가 폴란드·리투아니아와의 국경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이자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흑해를 향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북유럽과도 연결되는 발트해 방면으로 러시아의 ‘힘’이 향하면서 유럽 일대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이번 훈련엔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도 참여, 사실상 러시아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이다. 군사적 압박에 더해 최근 벨라루스가 국경 너머로 중동·아프리카 난민을 밀어넣는 조짐마저 보이자, 폴란드와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은 병력을 증파하고 부분적 국경 폐쇄를 단행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예정됐던 한국 방문을 취소하고 위기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를 개최한 리투아니아에도 비상이 걸렸다.
벨라루스 국방부는 8일(현지 시각) “서부 국경 흐로드나 주변 지역에서 벨라루스 육군이 중심이 된 합동 기동 훈련이 7일 시작됐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지난달 20일부터 이 일대에서 소규모 전술 훈련을 벌여왔는데, 이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지난 6월 말 무장 반란 실패 이후 벨라루스로 근거지를 옮긴 바그너그룹 용병 수백 명도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 벨라루스 국방부는 “(바그너그룹의)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적극 반영했다”며 “무인기(드론)를 사용한 전술 훈련, 전차·차량화 부대와 타 부대의 연계 전술 훈련 등을 한다”고 밝혔다.
흐로드나 일대는 약 100㎞의 ‘수바우키 회랑’이 시작되는 곳이다. 수바우키 회랑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간의 국경 지대로 인적 드문 평야가 대부분이라 기습 점령될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곳은 벨라루스에서 발트해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까지 도달하는 최단 거리다. 서방은 러시아가 나토를 상대로 군사 도발에 나설 경우,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바우키 회랑부터 점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랑이 점령당하면 발트 3국과 폴란드를 연결하는 육로가 차단된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바그너그룹이 폴란드 진격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지난 3일 이곳을 찾아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바그너그룹을 이용해 수바우키 회랑을 노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단일 대오를 흔들고자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을 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폴란드 정부는 이날 “벨라루스와 접경 지역에 1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보내겠다”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폴란드는 지난달 중순 바그너그룹이 벨라루스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국경 지역에 2000여 명의 병력과 전투 차량을 급파한 바 있다. 지난달 28일엔 폴란드 동부에 주둔 중인 병력을 현재 3개 사단에서 7개 사단으로 두 배 이상 증강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여기에 불법 월경을 시도하는 난민마저 급증, 이 지역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올 들어 벨라루스 국경을 통한 불법 월경 시도자는 1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6000명)에 비해 20% 가까이 늘었다.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도 같은 상황이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4일 “벨라루스 쪽 국경 검문소 6개 중 2개를 닫겠다”며 국경 일부를 폐쇄키로 했다. 라트비아 국경수비대도 “벨라루스 국경수비대가 난민들의 불법 월경을 도와 의도적으로 국경을 훼손하고 있다”며 “올 들어 확인된 것만 46건”이라고 밝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지난 2021년 말 벌어진 난민 사태의 재연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 벨라루스는 의도적으로 수만 명의 난민을 모집해 국경 쪽으로 내몰았다. EU와 나토는 “벨라루스와 러시아가 공모한 하이브리드 전쟁(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공격 행위)”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의 난민 문제를 악화시켜 정치·사회 불안을 조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특히 최근 월경을 시도한 난민 중 바그너그룹 용병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라트비아 국경수비대는 “난민 중 바그너그룹이 채용한 아프리카 출신 용병이 포함됐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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