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쫓겨난 왕자의 귀국… 태국 왕권 승계 새 국면

류재민 기자 2023. 8.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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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42세 바차라에손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의 둘째 아들 바차라에손 비바차라웡세가 8일 왕실의 후원을 받는 방콕의 한 보육원을 찾아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입헌군주제 국가 태국에서 ‘돌아온 왕자’ 신드롬이 일고 있다. 주인공은 27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방콕 수완나품 공항을 통해 입국한 바차라에손 비바차라웡세(42). 국왕 라마 10세(본명 마하 와치랄롱꼰·71)의 둘째 아들인 그가 돌아온 이후 X(트위터)에서는 ‘라마 10세의 아들이 태국에 돌아왔다(#SonOfTenReturnToThailand)’라는 해시태그가 39만회 넘게 언급됐다. 연일 절과 보육 센터 등 방콕 곳곳을 찾아 태국 국민을 만나고 있는 왕자의 행보를 현지 언론들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언론에 비친 그의 겸손한 모습은 태국 국민에게 호감을 사며 소셜미디어에 널리 공유되고 있다. 다음 복권 추첨 번호에 넣기 위해 바차라에손의 차량 번호판을 알고 싶다는 댓글이 우후죽순 이어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지난달까지 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버드대 출신 40대 기수’ 피타 림짜른랏(43) 전진당 대표 열풍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관심이다. 군주제 개혁과 징병제 폐지 등을 내걸고 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한 피타는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37) 프아타이당 대표와 군부 인사들을 제치고 유력한 총리 후보로 부상했지만,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피타 열풍을 왕자가 대체했다는 말이 나온다. 태국 왕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작년 말까지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는 라마 10세의 5남 2녀 중 첫째이자 장녀인 팟차라까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45)였다. 라마 10세 첫째 부인의 딸이다. 태국은 지난 1974년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개헌했다. 소탈한 성품의 검사 출신 공주를 두고 사람들은 ‘검사 프린세스(공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작년 12월 태국 육군이 주최하는 군견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반려견과 산책하던 중 쓰러진 이후 9개월째 의식불명 상태다. 라마 10세가 셋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일곱째이자 막내 아들인 디파꼰(18) 왕자도 왕위 계승 후보로 거론됐지만, 나이가 어린 데다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현국

왕위 계승 구도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5월 총선 이후 행정부 수반인 총리 선출 문제로 태국 정가가 혼란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비바차라웡세가 전격 귀국하면서 태국 사회에 뜨거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차라에손은 라마 10세의 셋째 자식이자 둘째 아들이다. 15살이던 지난 1996년, 그의 엄마이자 라마 10세의 두 번째 부인인 수자리니 비바차라웡세는 5남매를 이끌고 영국으로 떠났다. 당시 왕세자였던 라마 10세가 비바차라웡세 여사를 내치기 위해 60세 공군 장성과 간통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이혼을 선언하자 해외로 도피한 것이다.

27년간 외국에서 활동하던 바차라에손이 혼란 속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태국 왕실이 그를 새로운 후계자로 점찍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소탈한 모습은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민의 신망을 잃은 아버지인 라마 10세와 정반대의 모습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세 번째 부인인 스리라스미를 나체로 만들어 파티를 여는 동영상이 유출된 적도 있고, 코로나 시국인 2020년과 2021년엔 값비싼 독일 호텔에 묵으며 한 층 전체를 빌려 20여 명의 여성과 난잡한 파티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전 국민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의 방탕한 사생활은 2020년 태국 전역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의 단초를 제공했고, 군주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전진당의 총선 승리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차라에손은 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시 돌아와서 꿈만 같다. 오랫동안 외국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제가 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9일 현재 태국 왕궁은 바차라에손 귀국에 대해 논평을 내놓지는 않은 상태다. 파빈 차차발퐁푼 일본 교토대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바차라에손 귀국은 우연이 아니고, 왕위 계승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라며 “군주제에 동조하는 구세력들이 바차라에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바차라에손 성향이 개혁적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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