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게 좋을까, 멋있어 보이는 게 좋을까… 10대의 고민 그려
초등학교 5학년 반장 선거에 나간 명은이는 소원 수리를 위한 ‘비밀 우체통’을 공약으로 건다. 젓갈을 파느라 손톱이 시커멓게 물든 엄마는 “반장하면 돈 든다”며 말리지만, 명은이는 친구들에게 가난한 부모를 숨기고 급기야 가짜 가족을 만들어낸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솔직함과 거짓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10대 아이의 욕망을 파고든다.
지난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초청작(제너레이션 K플러스 경쟁부문)으로 지난달 개봉해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최근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주연 배우 문승아(14)는 발칙하고 야망 넘치는 주인공 명은이를 이해하기 위해 실제 명은이처럼 살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명은이처럼 글을 써보기도 하고, 영화 속의 ‘비밀 우체통’ 공약으로 실제 반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까지 됐다.
지난달 말 만난 문승아는 “처음엔 명은이의 옳지 못한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면서 저도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 때 멋있어 보이려고 꾸며진 얘기를 한 적도 많았거든요. 솔직하지 못해도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은 걸까, 저도 명은이처럼 고민하게 됐죠.”
아역 모델 선발대회에서 수상해 연기학원 무료 수강권을 받으면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눈빛이 남다르다’는 선생님의 말에 넘어가 연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할인하는 학원, 한 달짜리 무료 체험권 주는 학원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연기를 배웠다. “같은 학원을 3개월 이상 다녀본 적이 없어요. 좋게 말하면 다양한 연기를 배웠고, 나쁘게 말하면 연기가 들쑥날쑥했어요.”
문승아는 열 살에 ‘흩어진 밤’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최연소로 수상했고,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된 할리우드 영화 ‘전생’에도 출연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문승아 특별전’도 열릴 예정이다. “엄마가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어릴 때는 찍은 단편 영화 하나도 빠짐없이 영화제에 초청되길래 영화를 찍으면 다 영화제에 가는 줄 알았어요(웃음).”
함께 만난 이지은 감독은 문승아를 “짝꿍”이라 불렀다. “처음 오디션에서 만났을 때, 목소리를 꾸미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모습이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제가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승아 배우와 ‘같이 만들어가면 재밌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한때 아이돌을 꿈꿨던 문승아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배우는 예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 연기보단 잔잔하지만 강렬한 울림이 있는 연기가 저한테 잘 맞더라고요. ‘비밀의 언덕’도 관객을 펑펑 울리기보단 조금씩 눈물이 고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영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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