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부산 근현대사의 쓸모

류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장 2023. 8.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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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피란시절 때 부산, 신문물 수용 최전선 도시
시민 장롱 속 추억의 물건, 공공역사 자료 가치 충분
류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장

거칠게 말하자면, 역사는 지나간 자취이다. 이 과거를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런데 역사가는 역사를 기록하여 생산하는 연구자요, 대중은 ‘역사가의 역사’를 배우고 따른다는 인식은 과거사가 되었다. 더욱이 역사가 ‘완전한 팩트’라고 생각했던 시대도 지났다. 이제,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자일뿐이며 그들의 연구는 시대에 따라서 쓸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긴다. 역사가는 혹시 한 사건이나 인물을 두고 해석할 때 다양한 면모가 아니라 뒤통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공공역사(Public History)’라는 경향에 대해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때 유행하다 사라지는 이론이나 주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공공역사를 통해서 역사의 쓸모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역사는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역사책이 아니다. 역사는 박물관의 전시회로 열렸다가 기록관의 아카이브 시스템으로 정비되고, 심지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타났다가 어느새 광장의 동상으로 세워진다. 이처럼 공공역사는 다양한 공공(公共)의 영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역사를 통틀어 이른다. 역사가 지면에 갇힌 글이 아니라 매체의 다양성을 갖게 되었으므로 적어도 역사의 다각적 쓸모에 대한 궁리가 가능해졌다.

박물관의 유물 수집도 공공역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2023년 유물기증 캠페인으로 이런 카피를 내걸었다. ‘부산시민의 100년 추억을 찾습니다.’ 유물기증을 받는다면서 100년 추억을 찾는다니 이건 무슨 말일까. 부산 사람의 장롱은 꽤 쓸모가 있는 추억의 수장고이다. 장롱의 선반 위에는 엄마가 해준 저고리, 코흘리개들의 정다운 모습이 찍힌 초등학교 졸업 앨범, 아날로그 시대를 버티게 해주었던 손때 묻은 라디오가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장롱 속에 있는 추억은 개인의 물건일 뿐이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 역사관에 수집되어 빛을 발할 때 역사적 자료로서 공공성을 갖게 된다. 공적 유물을 통해 부산 사람들의 살아온 생활사를 재구성해 볼 수 있으니 시민 기증이야말로 공공역사에 동참해 보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한동안 근현대 생활자료들은 그 쓸모에 대해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박물관의 시선은 화려하고 웅장한 고급 예술품에 고정되어 있었다. 왕실에서 사용하던 공예품이거나 조선 최고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거나 문양과 빛깔이 화려한 도자기 등에 환호할 뿐이었다. 아울러 시간을 거스르는, 오래된 유물을 좋아했다. 근현대보다는 조선, 조선보다는 고려, 고려보다는 삼국으로 올라갈수록 유물의 아우라가 높아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역사관은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농기구나 아버지가 평생 쓰시던 일기나 형이 즐겨 듣던 LP판 등에 대해서는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줌의 고급예술로 어떻게 드넓은 역사의 모래밭을 채울 수 있겠는가. 이제는 편협했던 스테레오 타입도 깨져서 오늘과 가까운 시절의 역사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근현대사와 생활사를 다루는 박물관이 여기저기서 건립된 것도 박물관의 역사적 품이 넓어진 계기가 되었다.

근현대사의 쓸모가 커질수록 주목받는 도시는 부산이다. 부산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 근대사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곳이다. 초량왜관이 있던 용두산 일대는 개항장으로 변모하여 일본과 서구의 신문물이 유입되었다. 마치 사리 때의 바닷물처럼 급히 밀려오는 제국의 파고를 맞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피란 시절에도 부산은 여지없이 우리나라 현대사의 전면에 서서 거센 바람을 맞았다. 근현대사의 최전선에서 버티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변방의 부산이 지금의 부산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부산의 역사적 쓸모는 결국 근현대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막상 부산 사람의 장롱을 열어보니 쓸모 있는 근현대사 자료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분은 전화로 기증 문의를 해주셨고, 또 어떤 분은 바로 기증을 해주셨다. 한 향토사학자는 평생 모았던 향토자료들을 기증하겠다고 알려주셨고. 돌아가신 부친이 공직생활 중에 사용하던 측량과 지적 자료를 내주겠다는 분도 있었다. 산업화 시절 광고 사진 1세대였던 작가가 촬영했던 엄청난 양의 필름을 주면서 부산 산업사를 조명해달라고 부탁하신 기증자도 있었다. 그 아름다운 기증의 뜻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부산 사람들의 장롱 속 추억들이 매우 쓸모가 있으며, 부산의 근현대사가 형형색색임을 보여주는 자료임은 분명했다.


쓸모의 공은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부산 사람이 아낌없이 기증해 준 추억을 이어받아 부산근현대사를 더 쓸모 있게 만드는 일은 역사관의 몫이다. 개인의 소중한 물건이 공공역사의 쓸모 있는 자료로 단장되기까지 내 어깨도 꽤 무거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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