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가격제한폭 늘린 뒤, 단타족 몰려 ‘이상과열’

김은정 기자 2023. 8.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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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처도 미확정 단계인데… 상장 첫날 200~300%씩 급등

단기 차익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들며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주가가 출렁여 투자 주의가 요구된다. 스팩은 상장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증권사가 설립해 통상 코스닥에 상장하는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다. 스팩이 우량 기업을 발굴해 인수·합병하면, 해당 기업은 스팩을 통해 증시에 우회 상장할 수 있다. 스팩은 합병이 유일한 목적인 서류상 회사라 합병 전까지는 통상 공모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난 6월 말부터 신규 상장 당일 가격 제한 폭이 기존 공모가 대비 260%에서 400%로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7월 상장한 스팩들이 상장 첫날 줄줄이 200~300%씩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가격 상승 기대감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합병 이전 스팩은 실체가 없는 껍데기 회사에 불과한데 단타족들이 몰려들며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출렁이는 스팩 주가

7월 상장한 스팩 주가는 에코프로 등 2차전지 종목만큼이나 큰 변동성을 보였다. 제도 개편 이전인 올해 상반기 상장한 스팩의 상장일 주가는 공모가 대비 평균 4.5% 오른 반면, 지난달 상장한 스팩은 평균 152%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6일 상장한 교보14호스팩(공모가 2000원)은 상장 첫날, 장중 299% 뛴 7980원까지 치솟는 등 이례적인 급등세를 보였다. 스팩은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장 단계에선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이 때문에 통상 합병 이슈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가가 거의 변동하지 않는데, 이번 제도 개편 이후 상장 첫날 ‘따따블’(공모가의 400% 상승)에 대한 기대로 ‘묻지 마 투자’ 광풍이 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장 첫날엔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이 주가를 밀어올리는 것이다. 또한 다른 주식들에 비해 공모가가 낮아 접근성이 높은 것도 과열 요인이 되고 있다.

스팩 주가에 낀 거품은 빠지는 속도도 빠르다. 상장 당일 교보14호스팩 종가는 공모가 대비 240% 오른 6810원을 기록했지만 2거래일 연속 두 자릿수로 하락했다. 불과 1주일 만에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현재는 공모가나 다름없는 2060원 수준이다.

이런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역시 공모가가 2000원인 DB금융스팩11호의 경우 지난달 12일 상장 당시 장중 243%까지 올랐고 뒤이어 나온 SK스팩9호도 257% 급등했지만 1주일 만에 상장일 주가 대비 평균 47% 하락했다. SK스팩9호는 상장 이튿날 하한가를 친 데 이어 3일 차에도 18%대 떨어져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지금은 이들 스팩 모두 공모가인 2000원대 초반으로 되돌아갔다.

◇3년 내 합병 안 되면 공모가 정도만 돌려받아

스팩 시장이 ‘단타족’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모 물량이 500만주인 SK스팩9호는 상장 첫날 약 1억주가 거래됐을 정도로 손바뀜이 심했다. 단순히 상장 첫날 급등한 스팩 주가를 보고 고점에 추격 매수한 투자자들의 상당수는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 투자 카페 등에는 ‘○○스팩, 이것도 코인처럼 급등 가능. 4배 가자’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1일 일반 공모를 마친 KB26호스팩이 1조14억원의 청약증거금을 모았고, 이튿날 마감한 하나28호스팩과 SK10호스팩으로도 총 2조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경쟁률도 모두 1000대1을 넘었다.

주가가 널뛰고 있어 성급한 추격 매수는 피해야 한다. 공모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스팩을 샀다면 청산 시 돌려받는 금액이 투자 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 통상 스팩은 3년 안에 합병 기업을 찾지 못하면 청산되는데 이때 투자자는 ‘공모가’와 투자 기간에 따른 약간의 이자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후 다른 기업과 합병에 성공하더라도 손해를 볼 수 있다. 통상 스팩 합병가액은 올라간 주가가 아니라 공모가 수준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투자한 돈보다 적은 금액에 상당하는 합병 주식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일반적으로 기업은 지분율 희석을 우려해 주가가 비싼 스팩과의 합병을 기피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합병에 실패할 가능성도 커진다. 금융감독원은 “스팩 투자 시엔 주관사(증권사)의 평판과 과거 스팩 합병 성공률, 피합병기업 업권 등 정보를 보고 신중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SPAC(스팩)

‘기업 인수 목적 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영문 약칭. 비상장 기업을 일정 기간(국내 기준 3년) 안에 인수·합병(M&A)할 목적으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공모 펀드처럼 일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증시에 상장해 거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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