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현대차도 투자한다… ‘전기차 허브’로 뜬 이 동남아 국가

이정구 기자 2023. 8.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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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니켈 등 가공 안된 채로는 수출 금지 ‘자원 무기화’ 효과도

세계 4위 인구(약 2억8000만명) 대국으로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1990년대 ‘동아시아의 기적’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했던 경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저물었고,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산업화에 뛰어들면서 저임금 기반 노동집약산업 성장도 한계를 맞으면서 둔화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16위 경제 규모로 동남아에서 유일한 G20(주요 20국) 회원국이지만 산업 고도화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김경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도남아시아팀 부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 위기 때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65개월 동안 대통령 5명이 집권하며 산업 정책 기반도 흔들렸다”고 했다.

이런 인도네시아에 최근 주요 완성차 회사인 포드·현대차, 배터리 선두 기업 CATL·LG에너지솔루션, 양극재 1위 유미코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며 ‘전기차 배터리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 생태계가 전혀 없었던 인도네시아에 글로벌 기업이 경쟁적으로 조(兆) 단위 투자에 나선 건 배터리 핵심 광물인 니켈·코발트를 앞세운 ‘신(新)자원무기화’ 때문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그래픽=김성규

◇LG엔솔, CATL 인니에서도 배터리 격돌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2100만t), 생산량(2022년 약 104만t) 모두 세계 1위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배터리 필수 원료인 니켈 원광(原鑛·가공하지 않은 광물) 수출을 금지했다. 현지 가공품 수출만 허용하면서 ‘신자원무기화’를 선언했다. 니켈은 전기차용 이차전지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원료다. 니켈 함량이 높은 이른바 ‘하이니켈’ 전지일수록 에너지 밀도와 용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배터리 시장 성장과 맞물려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약 37%를 차지하는 데다 또 다른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코발트 매장량(60만t)도 세계 6위, 작년 생산량은 9500t으로 2위를 기록하며 배터리 자원 부국(富國)으로서 위상이 더 높아졌다. 사업가 출신으로 2014년 당선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자원무기화를 주도했는데 100여 개에 달하는 국유기업과 자원 통제력을 바탕으로 해외 투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인도네시아 니켈 쟁탈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배터리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의 CATL은 인도네시아에서 맞붙었다. LG가 주도하고 포스코그룹, LX, 인도네시아 국영 광산기업 안탐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채굴부터 배터리 생산까지 이른바 ‘그랜드 패키지’ 밸류체인 구축에 약 90억달러(11조8000억원)를 투자한다. LG엔솔의 권영수 부회장은 이달 초 현지를 방문해 연내 양극재 공장 착공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 CATL도 인도네시아 국영 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려 니켈 광산과 배터리 사업에 약 6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인도네시아 현지에 배터리는 물론 자동차 생산 공장 구축에 나섰다. 현대차와 LG엔솔이 11억달러를 투자하는 배터리 합작 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이 목표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아세안 지역 첫 완성차 생산 공장도 구축해 작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포드도 오는 2026년 목표로 니켈 생산 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45억달러를 투자한다. 테슬라도 전기차 생산기지 건설과 함께 니켈 채굴 투자를 검토 중이다.

포스코홀딩스는 4억4100만달러를 투자해 연내 니켈 제련 공장을 착공한다. STX도 최근 술라웨시 지역 니켈 광산 지분 2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최대 광산업체 글렌코어와 벨기에 양극재 생산 업체 유미코어 등이 협력하는 컨소시엄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과 배터리 생산에 9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성규

◇니켈 수출 금지 효과 톡톡…광물 통제 확대

세계무역기구(WTO)는 작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니켈 자원 무기화’에 대해 “자유경쟁을 침해한다”면서 협정 위반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보크사이트 수출 금지, 구리 수출세 최고 10% 부과 등 자원 수출 통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작년 말 “과거 광석 수출로 연평균 11억달러를 벌었지만, 이제는 니켈 제품 수출로만 연 208억달러를 벌어들인다”며 광물 수출 규제 확대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니켈 수출을 통제했더니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고 배터리 산업 허브가 구축되는 등 뚜렷한 경제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원 빈국 여건에서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배터리 시장은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EU CRMA(원자재법) 등 영향으로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국가 간 생존 경쟁으로 변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자원 외교와 통상 대응, 기업의 해외 투자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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