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 수사했을 뿐인데 해임” vs “보고서 이첩 보류 명령 어겨”

손효주 기자 2023. 8.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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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수사단장 보직해임 논란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사망 경위에 대해 기초 수사를 진행한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국방부 간 주장이 크게 엇갈리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지난달 31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수사 보고서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받고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에게 같은 지시를 했음에도 박 대령이 이첩을 강행하며 항명했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은 보직 해임됐고 집단 항명 혐의로 군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반면 박 대령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을 직간접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보류 명령 자체가 없었으니 항명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박 대령은 “윤석열 대통령께서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고 이 지시를 적극 수명(受命)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이날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를 장관 소속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항명 혐의에 연루된 해병대 수사단이 관련 업무를 계속 맡는 건 부적절하다며 재조사를 명령한 것이다.

● “명백한 항명” vs “거부할 명령 없었다”

국방부와 박 대령 간 최대 쟁점은 이첩 보류 명령이 있었는지다. 박 대령은 지난달 31일 채 상병 사망 경위에 대해 기초 수사한 내용을 언론과 국회에 설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고 시간 직전 돌연 취소됐다. 그 이틀 뒤 박 대령은 이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는데, 박 대령은 즉각 보직 해임됐다. 이첩 보고서는 회수 조치됐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박 대령은 2일 이첩 때까지 장관 지시를 전달받지 않았다고 맞섰다.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이 장관을 만나 수사 내용과 이첩 계획을 보고했고 장관이 보고서에 서명하며 이첩 명령을 한 만큼 오히려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 측은 “명령 내용이 보류로 바뀌었더라도 서면 등 공식 경로로 바뀐 명령을 전달받은 바 없다”고 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통해 보고서에 대한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이첩 보류 관련 내용을 들은 바 있지만 이는 이들의 사견이었을 뿐이라고도 했다.

● “윗선 개입” vs “개입 일절 없어”

지난달 30일 이첩을 승인한 이 장관이 하루 만에 이첩 보류로 결정을 뒤집은 이유도 논란이다. 군 안팎에선 사건 당시 병사들에게 무리한 수색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구제하려고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임 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수정하려고 이첩 보류라는 무리수를 두다 항명 사태를 불렀다는 것. 군 내부에선 “임 사단장이 차기 해병대사령관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만큼 국방부가 대통령실 지시로 임 사단장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장관이 결정을 뒤집은 시점이 대통령 국가안보실이 지난달 30일 수사 내용이 담긴 언론 브리핑 자료를 미리 받아본 직후여서 의혹은 더 증폭되는 분위기다.

국방부는 “임 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려던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장관은 보고서에 초급 간부에게까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건 과하다며 우려했다”며 “보고서에 서명할 때부터 이런 우려를 하다 다음 날 해외 출장을 떠나기 전 급히 보고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법무관리관에게 지시하며 이첩 보류를 명령한 것이지 윗선 개입은 없었다”고 했다.

이첩 보류는 보고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였다는 것이 국방부 입장이다. 임 사단장 등 8인에 대해 혐의가 명시된 보고서가 경찰로 이첩되면 경찰 정식 수사에 지침을 주는 격이 된다는 것. 국방부는 “보고서에는 각자의 과실과 채 상병 사망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고 했다. 반면 박 대령 측은 관련 훈령에 사건을 경찰에 넘길 때 죄명을 명시하게 돼 있음에도 죄명을 빼라는 건 부당한 지시라는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는 9일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 수사 보고서를 즉시 경찰에 다시 넘겨야 한다”며 “집단항명죄 수사도 보류돼야 한다”고 밝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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