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가성비 높은 사랑
뙤약볕 아래 파도의 몸짓이 힘겨워 보인다. 넓은 길 중앙리와 구북리 마을이 텅 비어 있다. 턱까지 차오른 더위를 피해 주민들이 집 안에 숨은 모양이다. 나이 먹은 나무들도 숨을 헐떡이며 쩔쩔맨다. 소록도의 8월이 몹시 뜨겁다. 107년 만고풍상의 흔적들이 모퉁이마다 서려 있다.
1916년 5월17일 조선총독부가 이곳을 ‘갱생원’ 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에 있는 한센인들을 밀어 넣으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명분은 치료와 전염을 막는 것이지만 무작정 그들을 섬에 가둬 반인권적인 학대와 노역을 일삼았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서러움에 혹독한 시련까지, 한센인들에게는 삶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이 고난의 시간은 8·15광복, 6·25전쟁, 산업화가 이어지는 동안 멈추지 않았다. 아픔과 눈물의 여정이었다. 맺힌 한이 애틋한 바람이 돼 스친다.
소록도에는 길이 참 많다. 해변에도, 동네 사이에도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뉘어 있다. 함께 어우러진 나무와 바위들이 격조 높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 모두가 일제강점기에 한센인들의 불편한 손과 발에 의해 갈고 닦아졌다. 채찍 맞고 험한 소리 들어가며 고통을 섞어 조성했기에 가슴에 절절함이 더하다.
그럼에도 이 섬에서는 원망이나 분노의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슬픈 기색도 없다. 평화로움과 너그러움이 푸른 숲 가득하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
버림받았음에도, 마음 아파 엉엉 울었어도 한센인들은 노여워하지 않고 슬픔을 참으며 견뎌 왔다. 성내거나 무례히 행치 않았다.
영혼에 사랑을 듬뿍 담아 자신들을 외면한 가족들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잠잠히 기도했다. 품을 넓혀 병든 이들과 낙심한 사람들을 보듬었다. 도시에서 보는 분노의 폭발과 격한 다툼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 용서가 배합된 고급스러운 소록도 사랑이었기에 칙칙한 원망을 충분히 이겨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조급하고 냉정해 사랑에 서툰 우리들이 마음 열어 한 수 배워야 할 명품 중의 명품이라 여겨진다. 가성비 높은 그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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