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아버지가 만든 월드코인… 금융혁명이냐 사기냐
현재 1억개 발행, 총 100억개 예정
지난 1일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는 축구공만 한 작은 구(球)가 놓여 있었다. ‘오브(orb·구체)’라 불리는 이 기계는 사람의 홍채를 인식해 신원을 증명하는 기기다. 앱을 깔고 QR코드를 오브에 인식시킨 후 동그란 구 정면의 렌즈를 바라보자 10초 후 앱 내 가상 화폐 지갑이 만들어졌다. 지갑에는 ‘월드코인’이라는 가상 화폐 1개가 들어왔다. 이 모든 과정엔 약 1분 정도가 걸렸다.
챗GPT를 만든 샘 올트먼이 내놓은 월드코인이 전 세계 테크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달 출시된 월드코인은 샘 올트먼의 가상 화폐 프로젝트이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을 구별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올트먼은 월드코인이라는 스타트업을 2019년 공동 창업하고 본격 실험에 들어갔다. “월드코인으로 새로운 신분 증명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인류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올트먼의 생각이다.
월드코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AI 시대 금융 혁명이라는 예찬과 함께 생체 데이터를 이용한 정보 남용과 일종의 가상 화폐 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프랑스·영국·독일은 월드코인의 홍채 데이터 수집의 위법성을 우려해 조사에 착수했다.
◇“AI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수단”
월드코인은 홍채 인식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신원을 검증하고, 이 인증을 통과한 이들에게 가상 화폐 지갑(월드앱)과 가상 화폐(월드코인)를 준다. 지금껏 약 200만명이 자신의 홍채 데이터를 등록하고 대가로 월드코인을 받았다.
월드코인은 미래에 AI와 인간의 구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올트먼은 “AGI(범용AI) 시대가 도래하면 사람이 수행하는 작업과 AI가 수행한 작업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현재 챗봇 AI를 뛰어넘는 로봇 형태의 진화한 AI가 개발되면 인간과 AI의 구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올트먼은 이를 대비해 홍채 인식을 꺼냈다.
인간의 두 눈 홍채 무늬와 형태, 색 등을 판별할 경우 신원 확인 오류가 발생할 확률은 1조분의 1 수준이다. 지문(1만분의 1)이나 얼굴 인식(1000분의 1)보다 오류 확률이 작다. 이러한 홍채 인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가상 화폐인 월드코인을 발행해 일종의 ‘디지털 여권’을 발급하겠다는 발상이다.
월드코인 측은 홍채 인식이 세계 각국의 신원 증명 시스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저개발 국가에서는 사회 취약층이 주민등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렉스 블라니아 월드코인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홍채는 누구나 자신을 증명할 ID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화폐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 소득을 월드코인으로?
올트먼은 월드코인을 신원 증명을 넘어 기본 소득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AI가 발전한 미래 일자리는 지금과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미래에도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다만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추가적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월드코인을 통해 기본 소득을 지급하면 AI 시대에 벌어질 일자리 감소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트먼은 “(이를 통해) 인류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올트먼은 기본 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테크 업계에선 월드코인을 2가지 이유로 비판한다. 첫째는 “올트먼이 생체 데이터 거래를 통해 월드코인 수익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월드코인은 약 100억개가 발행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약 1억개가 발행됐다. 월드코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월드코인도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며 “코인 가격이 오르면 누군가 차익을 볼 수 있고 가장 큰 수혜자는 올트먼일 수 있다”고 했다.
더 큰 우려는 홍채 데이터 유출 위험이다. 월드코인 측은 “홍채 인식 기기인 오브엔 열화상·적외선 카메라가 내장돼 있고, 렌즈 앞에 사람이 앉아야만 작동하기 때문에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수집한 홍채 데이터는 암호화돼 신원 확인 후 폐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삭제를 하더라도 일종의 흔적이 남아 해커 등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실제로 프랑스·영국·독일 정보 당국은 월드코인에 대한 조사 및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프랑스는 “월드코인의 홍채 데이터 수집 방식과 보안성이 의심스럽다”고 했고, 케냐는 아예 자국 내 홍채 데이터 수집을 금지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오브 기기의 보안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며 “적대적인 정부나 부유한 소수가 이 시스템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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