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문재인정부 닮아 가는 윤석열정부

박창억 2023. 8. 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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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터지면 ‘前 정권 탓, 남 탓’
‘잼버리 참사’도 책임 전가 급급
국회 무시·낙하산 인사도 비슷
‘말 따로, 행동 따로’까지 되풀이

“이제 더 이상은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나 또 전(前) 정권에서 잘못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핑계도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강조한 지 1년이 다 됐지만, 윤 정부는 일만 터지면 여전히 ‘전 정권 탓, 남 탓’을 하고 있다.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놓고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와 전북도에 책임을 전가하느라 급급하다.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반 시설 구축 미비는 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책임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윤 정부가 출범한 지 이미 15개월이 지났다. 윤 정부가 제대로 챙겼다면 15개월은 부족한 점을 개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더구나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시종 확신에 찬 태도로 “차질 없이 준비할 것”이라며 성공적인 개최를 자신했다.
박창억 논설위원
윤 정부의 ‘전 정부 탓, 남 탓’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를 놓고도 “세월호 참사 이후 시스템을 만들겠다더니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 이 사고 자체는 일단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고 주장했다. 난방비 폭등,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전세 사기도 모두 문 정부 탓을 했다. 전 정부 탓을 하면 자신의 잘못은 덮어 버리고 논점을 진영 논리로 바꿔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문 정부도 ‘전 정권 탓, 남 탓’을 많이 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2020년 8월 국회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정권 때는 안 올랐냐”고 소리쳤지만, 부동산 가격은 문 정부 때 가장 많이 올랐다. 문 정부는 경기침체, 고용 불안, 수해도 모두 이전 보수 정권 탓을 했다. 과거 탓, 남 탓을 하면 일시적으로는 자신의 무능을 감출 수 있으나, 원인을 엉뚱한 곳에 돌리게 돼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윤 정부는 문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도 전 정부를 닮아 가고 있다. 국회 무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윤 대통령은 국회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다.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벌써 15명에 달한다. 문 정부 시절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30명을 훌쩍 넘기자 국민의힘은 “국민 무시, 야당 무시”라고 비판했다.

문 정부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친일 기득권 세력’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윤 정부는 ‘종북주사파’가 대한민국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몰아세운다. 친일 기득권 세력만 종북주사파로 바꾸면 그 정치적 배경과 의도는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인사 난맥도 되풀이되고 있다. 문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그토록 비난하고 윤 대통령이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가 줄을 잇는다. 지난 정부는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이었던 조해주씨를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해 논란을 빚더니, 윤 대통령은 자신의 대학 과 동기를 선관위 사무총장으로 발탁했다.

‘공영 방송’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방송사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는 것도 닮았다. 전, 현 정부 모두 법에 엄연히 명시돼 있고 매년 예산까지 배정되는 특별감찰관도 유명무실한 제도로 만들어 버렸다. 문 정부를 청와대 권력이 비대해진 ‘청와대 정부’라고 비난하더니, 지금도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시시콜콜한 현안까지 챙기고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에 굳어진 데는 이런 행태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는 얼마나 그럴 듯했던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실제 국정 운영은 국민을 실망하게 했고, 결국 5년 만에 정권을 내주는 ‘단명 정권’이 됐다. 지난해 ‘전 정권 탓’하지 않겠다던 윤 대통령의 다짐도 허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두 정권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것도 닮아 가고 있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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