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과학기술R&D, ‘개방과 협력’으로 도약해야
정부 출연硏, 국내외 협력 통해 변화 필요
정부는 기관 자율성 존중하며 협력 독려해야
그리고 올해 5월 말, 발사 현장에서 치솟는 누리호를 가슴 설레며 지켜본 수많은 어린이는 미래의 과학기술자를 꿈꾸었을 것이다. 정부 R&D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정부 R&D 예산은 1980년 약 1000억 원 규모에서 이제는 그 300여 배에 달하는 31조 원에 이르렀다. 우리 국민은 현재도 과학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간 정부 R&D의 주요 목표는 앞서가는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 즉 경제 발전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R&D는 그 이상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은 경제와 더불어 국가의 근간인 국방,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더욱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국격(國格)을 높이며 국부(國富)를 쌓는 과학기술은 국력(國力) 그 자체다.
정부 R&D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1966년에 처음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출연(出捐)연구소(출연연)라는 특수법인이다. 일반적인 국공립 연구소를 뛰어넘는 자율성 확보와 연구인력에 대한 특별 처우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KIST는 설립 후 지난 50여 년 동안 총 12조 원 정도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컬러 TV 개발 등 약 600조 원의 경제·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그리고 KIST에서 분화해 독립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에도 이동통신(CDMA) 등을 통해 40년 동안 약 370조 원의 파급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됐다.
출연연들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간 맡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되새김질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오늘날은 과거 산업시대와는 완연히 다른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기이기에, 종래의 R&D 패러다임도 확실하게 바꿔야 할 시점이다. 마치 석기시대가 청동기시대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은 그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기에 출연연들은 화급하게 조직과 운영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현재의 과학기술 출연연은 분야별로 건설, 철도, 전자, 통신, 전기, 화학, 재료, 식품, 한의학 등 25개로 나뉘어 ‘각개약진’과 ‘각자도생’을 모색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디지털 문명은 융합의 시대다. 이제는 연구자 개개인부터 그들이 속해 있는 연구기관까지 모두가 마음과 문을 열고 협력해야 한다. 즉, 출연연들은 절대적으로 ‘개방과 협력’을 모색하는 새로운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나서 과감한 혁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머뭇거리면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계속 돌만 다루고 있는 쓸모없는 조직이 될 수 있다.
국내 대학 및 기업과 출연연들이 협력해야 하는 일은 당연하고, 더 나아가 국경을 넘는 연구 협력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제협력 R&D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냉정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즉, 상호 보완적인 연구 수준과 능력이 되어야 협력을 통한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급작스럽게 국제공동연구를 독려하면서 이를 위해 출연연들을 일률적으로 몰아가는 최근의 정부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연구기관과 연구원들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국제협력을 독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출연연의 장기적 리더십을 보장해야 한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일본을 대표하는 이화학연구소(RIKEN)는 4명의 소장이 책임을 맡은 것에 비해 KIST는 모두 10명의 원장이 일했다. 연구의 생명인 미래를 지향하는 장기적 업무 추진은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다.
출연연 스스로의 혁신은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듯싶다. 우선 해야 할 혁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노사 갈등의 늪을 헤쳐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세계 어느 곳에도 연구원들이 조합을 결성해 경영에 관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연구조직은 없다.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출연연이다. 모든 면에서 앞장서 대한민국을 리드하길 바란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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