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건설 감리 조직 의무화, 1년 반 넘었지만 ‘있으나 마나’
지자체 ‘지역건축안전센터’ 필수 인력 확보도 못한 채 파행 운영
기존 시스템 관리도 못한 정부, ‘감리를 감리’ 새 조직 신설 움직임
민간 건설현장의 ‘감리를 감리’하는 지자체 조직인 ‘지역건축안전센터’가 의무 도입된 지 1년8개월이 지났지만 필수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운영되는 곳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부는 철근 누락 사건 여파로 중앙정부나 지자체 소속의 감리 감독기구를 새로 만들려 하지만 이미 있는 조직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시·도 및 자치구에 설치가 의무화된 지역건축안전센터는 민간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 인허가 시 설계도면을 검토하고, 건축공사장 안전 및 노후건축물을 점검하도록 만들어졌다. 기존의 지자체 인력만으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설계 점검이 어려워 센터 내에는 건축사와 구조기술 전문가를 각 1명씩 반드시 둬야 한다.
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달 초 기준 서울시 자치구 25개 가운데 중구·성동구·광진구·동대문구 등을 포함해 8곳이 필수인력인 구조기술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초 지자체를 관리하는 서울시 소속 지역건축안전센터도 지난달 구조기술자 자리가 공석이어서 채용 공고를 낸 상태다.
최근 철근이 누락된 LH 아파트 단지들이 소속된 지자체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 아파트가 있는 인천 서구는 1년 동안 적합한 인물을 구하지 못해 구조기술 전문가를 채용하지 못했다. 파주는 센터가 설치된 지 2년여 만인 지난달에서야 구조기술 전문가를 채용했다. 남양주는 구조기술사 지원자가 없어서 구조 분야의 경력이 있는 인력으로 대신 충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를 보면 센터의 역할 중에는 ‘구조설계 기준 및 하중의 적합성’ 점검이 있다. 최근 철근이 누락된 단지 15곳 중 10곳이 구조설계 오류에서 비롯된 만큼 이 업무의 중요도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센터들은 구조기술 전문가를 뽑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에 비해 연봉이 낮고 처우도 6급 별정직 공무원으로 좋지 않아서 지원자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현재 중앙정부의 지원금은 센터 설립 초기에 주는 일회성 정착지원금 2000만원이 전부다.
필수 인력을 채운 곳일지라도 구조설계를 꼼꼼하게 점검하기엔 인력이나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파주 센터 관계자는 “점검 대상이 많기 때문에 한 현장당 분기별로 1회씩 방문해서 2시간 정도 머문다”며 “센터 임무 중에는 태풍 예방, 노후건물 점검 등 다른 일도 많아 구조설계만 신경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 센터 관계자도 “설계도면을 보고 철근 배근을 일일이 확인할 여력은 부족하다. 현장에선 건설노동자 안전 관리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건설현장의 감리를 감독하는 별도 기구를 도입할 경우 감독대상은 민간 현장과 LH 등 공공기관 발주 현장까지 모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되더라도 부실설계와 시공을 예방할 근본적 처방은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정부는 사고가 나면 자꾸 감독을 강화하려고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구조전문가가 건축사와 대등한 자격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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