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폭염’ 닥친 중남미…안데스 만년설도 녹는다
칠레 북부 비쿠냐 37도 기록
엘니뇨 현상에 이상고온
현재 한겨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에서 일부 도시의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등 이상고온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BBC 등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칠레 북부 코킴보주 비쿠냐는 최근 37도를 기록했다. 이맘때 평균 기온인 18도보다 20도 가까이 높다. 이는 1951년 8월 이후 72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기록적인 ‘겨울 폭염’으로 눈이 녹아 칠레의 일부 스키장은 며칠 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지리학 박사인 파블로 사리콜레아 교수는 엘파이스에 “기후변화와 엘니뇨 현상 때문에 현재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폭염은 이례적”이라며 “비쿠냐의 이 같은 고온현상은 2064년에나 닥쳐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40년이나 빠르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최근 30도를 넘어섰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기상 관측이 이뤄진 117년 동안 유례를 찾을 수 없는 8월 초 기온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1942년 8월1일의 24.6도로, 81년 만에 새 기록을 썼다.
브라질·우루과이·페루·볼리비아 등도 20~30도를 기록하며 한겨울에 무더위를 겪고 있다. 남미 각지 해발 1000m 이상의 수십개 기상관측소 수은주도 35도를 넘어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최근 기온은 27도를 기록했다. 겨울 폭염으로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주민들이 마치 여름휴가철처럼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엘니뇨 현상과 기후변화에 더해 안데스 산맥의 고기압 등의 영향으로 남미의 겨울에 유례없는 폭염이 발생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안데스 산맥 동쪽에 ‘블로킹 하이’라고 불리는 고기압이 머무르면서 폭염이 심화됐다. 블로킹 하이는 고위도에서 정체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온난 고기압을 뜻하는데,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주변 대기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이상고온 현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해발 고도가 높은 안데스 산맥의 눈마저 녹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데스 산맥의 폭염으로 해발 3000m 이하 지역에 쌓인 눈이 녹아 봄과 여름이면 해빙수에 의지해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에게 연쇄 파급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으면, 안데스 산맥에서 식수와 농업 및 발전용 물을 제공받는 인간들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도 영향을 받는다. 기상학자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는 “남미는 세계가 본 적 없는 극한 현상에 처해 있다. 이 사건은 모든 기후 서적을 다시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폭염뿐 아니라 각종 자연재해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넘게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칠레에서는 늦여름인 지난 2월 폭염으로 인한 대규모 산불로 수십명이 사망했다. 우루과이는 74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수도 몬테비데오와 그 일대 저수지들이 모두 말라붙어 더 이상 수돗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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