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애기시구나"... 초등생 성 착취 공무원 등 6명 '집행유예' 그친 이유는
사범대 학생, 공무원 등 20~40대 남성
피해자와 합의·형사공탁으로 감형
법원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초등학생 2명을 유인해 성 착취한 남성 6명에게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법원에 공탁금을 거는 등 법을 악용해 실형을 피했다. 인권단체들은 "아동 대상 성범죄는 합의나 공탁금이 형량을 낮추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임기 줄게" 꾀어 의제강간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1심 재판부는 초등생 2명을 꾀어 성매매한 20~40대 남성 5명에게 미성년자 의제강간·강제추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 초등생에게 성매매를 제안한 남성 1명에 대해서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며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다른 피해자에 대해서는 공탁을 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가해자들은 지난해 5~6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피해 아동들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온라인 채팅을 통해 "게임기와 돈을 주겠다" "(스킨십 수위를 알려주며)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어려운 건 아니다"라고 유인했다. 한 가해자는 메시지로 피해자의 나이를 듣고 "아아, 애기시구나"라며 초등생인 것을 인지하고도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 아동들은 당시 만 11세, 12세였다. 이들은 피해 아동들을 모텔 등으로 유인한 뒤 게임기와 현금을 주고 수차례 성관계를 했다.
가해자 직업은 사범대 대학생, 공무원, 회사원, 자영업자 등이었다. 이들은 한 피해 아동의 아버지가 딸이 새 휴대폰 등 고가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수상히 여겨 피해 사실을 인지,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지난 4월 피고인 6명에게 최대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감형의 기술' 공탁..."그 돈 필요 없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 아동과 인권단체는 크게 반발했다. 이들이 실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술한 법망 때문이다.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법원에 거액의 공탁금을 내면 감형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9일 CBS 라디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지금 1년 넘게 법원에 엄벌 청원서만 수십 번 냈고, 이 사람들하고는 도저히 합의가 안 되고 용서를 못 하겠다"며 "피해자가 용서를 안 하는데, 왜 판사가 공탁을 걸었다고 해서 용서를 해주냐, 나는 그 돈 필요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오승유 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팀장은 "작년에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 제도'가 이번 판결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과거엔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만 공탁금을 낼 수 있어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공탁을 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12월부터 개인정보를 몰라도 할 수 있는 '형사공탁 특례 제도'가 시행됐다.
피해자 정보를 몰래 캐내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취지였지만, 피해자가 엄벌을 원해도 피의자가 공탁금을 내면 감형 요소로 작용하면서 '꼼수 감형' 창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형사공탁이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감형의 기술'이자 피의자에게 유리한 '천사 공탁'이라는 비판도 지속되고 있다.
선고 직전 공탁금 거는 '기습 공탁'도 문제
공탁금으로 감형을 받은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서울 강남의 음주운전 차량의 스쿨존 9세 초등생 사망 사고, 부산의 직장 동료 모텔 방치 사망 사고도 피해 가족들이 엄벌을 원했지만, 가해자들은 공탁으로 감형을 받았다.
특히 피해자가 공탁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지 못하도록 법원 선고 직전에 피해자 몰래 기습적으로 공탁금을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번 강릉 초등생 성 착취 가해자들도 재판 직전 공탁금을 걸었다. 이 같은 '기습 공탁'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전국 검찰청에 기습 공탁 방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유 팀장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는 합의도 공탁금도 형량을 낮추는 데 고려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 아동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며 " 한 친구는 지금 너무 심한 트라우마로 입원까지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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