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무방비’ 총체적 난맥…잼버리 파행 책임 누구한테 있나

채윤태 2023. 8.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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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파행]전례없는 졸속·부실 갑론을박
여가부는 허둥, 지원위는 늑장
지난 8일 오전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대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3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으며, 부실 준비 및 운영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자 행사를 유치한 ‘지방정부(전라북도)의 탓이 크다’는 비판이 나왔고, ‘뻘밭 야영지’가 될 게 불 보듯 뻔한 새만금에 행사를 유치한 것부터 잘못된 게 아니냐며, 전임 정부를 넘어 전전 정부 책임론으로까지 논란이 번지고 있다. 정치적 진영 논리 안에서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벌써부터 감찰 및 감사, 검찰 수사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선, 유치한 잼버리를 실제 준비·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였는지부터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 소재를 규정하고 있는 건, 2018년 시행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이다. 이 법은 잼버리 종합·운영 계획 수립과 시행, 관련 시설 설치·이용 계획 수립과 시행의 주체로 ‘조직위원회’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위 구성을 인가할 권한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있다.

조직위는 특별법 통과 2년 뒤인 2020년 7월 이정옥 당시 여가부 장관과 이 지역 국회의원인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2인 공동위원장 체제로 출범했다. 공동위원장 체제라지만, 여가부 장관이 잼버리 준비 및 운영을 위해 필요한 예산 승인권은 물론, 업무 수행에 필요한 인력 파견 요청 권한 등을 갖고 있어, 사실상 여가부가 잼버리 준비와 운영의 키 전부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가부가 대규모 국제 행사를 열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조직위가 늦게 출범한 상황에서, 조직위 실무 총책임자인 사무총장은 청소년이나 국제 행사 전문가가 아닌, ‘양성평등 정책 전문가’(최창행 전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에게 맡겨졌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됐고 정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2022년 5월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새 공동조직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잼버리 개최까지 1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등을 더해, 5인 공동조직위원장 체제로 조직위를 확대한 것은 불과 행사 5개월 전이다.

사실, 잼버리 파행의 원인을 조직위 쪽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잼버리에 대한 대규모 예산 지원이나 관련 정책 심의·조정 권한은 ‘정부지원위원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지원위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여가부 장관이 부위원장을 맡는다. 여가부를 넘어, 사실상 정부 전체에 잼버리 준비와 운영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조직위는 2021년 4월에야 구성됐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1월과 윤석열 정부 때인 올해 3월 각각 한차례씩만 회의를 했다.

조직위의 한축인 한국스카우트연맹 쪽의 ‘발언권’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맹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운영에 개입하며, 쉽게 말해 자기들 마음대로 다 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 결과는 뻘밭 야영장과 위생 불량 화장실, 천막 샤워장으로 대표되는 부실한 ‘시설’ 문제와 폭염과 태풍 등 자연재해에 대한 ‘무대책’으로 나타났다.

조직위가 행사 개최에 가장 기본이 되는 △기반시설 설치 △대집회장 조성 △영외과정활동장 조성 등의 시설 설치 계획을 내놓은 것은 2020년이다. 하지만 이듬해 차인순 국회 여가위 수석전문위원은 ‘2020회계연도 검토보고서’에서 “잼버리 실시 시기가 2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지연된 세계잼버리 기반시설 구축 사업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사업 추진 점검 및 일정 관리 등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며 준비 부족을 짚었다. 2022년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송주아 국회 여가위 수석전문위원은 ‘2023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행사 개최가 1년도 남지 않은 2022년 9월 말 현재까지도 기반시설 설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부터 3년간 편성된 잼버리 총사업비 1171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617억원이 올해 집행됐다. 조직위는 전체 예산 가운데 조직위 운영비로 잡힌 740억원 가운데 656억원은 참가자 급식 및 운영요원 식당 운영(121억원) 등 야영 및 프로그램 운영 사업비로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항변은 사상 초유의 ‘조기 철수’라는 파행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채윤태 이주빈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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