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범정부 대책 요구 커지는데…경찰은 “개념 정립 안 돼 통계 관리 못해”
권인숙 의원실 자료…국회 답변 땐 “사례별 분석이 타당”
전문가들 “미·일 등 사례 참고해 국가 차원 체계적 접근을”
경찰이 지난해 9월과 올해 6월 국회에서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범행에 대한 통계 수집 등 대책 마련을 요구받았지만 “개념을 정립할 수 없어 통계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관련 통계를 수집 중인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범정부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지난해 9월 경찰청의 ‘묻지마(이상동기) 범죄 현황 답변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묻지마 범죄는 비법률적·비학술적 용어로 별도 통계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지난 6월에도 같은 답변을 하며 “사건별로 피의자의 범행동기, 심리상태 등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해 1월 ‘이상동기 범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관련 통계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권 의원은 지난 6월22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라든가 일면식 없는 대학생을 살해한 정유정 사건 등 묻지마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발생 현황 등을 물었더니 통계 부재라고 하더라. 대책 마련한다고 하고 1년 반이 지났는데 안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윤 청장은 “말씀하신 그런 여러 언급된 부분들에 대해 나름 다 저희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권 의원 질의에 지난 7월 서면 설명자료를 통해 “실질적인 이상범죄 판단을 위해서는 정량적 분석보다 사례별·질적 분석이 타당하다. 대검(찰청)도 공식적 통계는 없는 상황”이라며 통계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질적 사례 분석을 위해 이상범죄의 범행동기를 기존 ‘우발적’ ‘현실 불만’에서 ‘이해당사자 간 대인 갈등’ ‘제3자 대상 분풀이’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 ‘사회에 대한 적대감’ 등으로 세분화해 효율적인 수사 착안 사항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지난 3일 전국 시·도경찰청장 긴급 화상회의에서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극도로 높은 상황에서 이와 유사성이 있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며 전통적 범죄와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4일에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최고 수준의 경찰 물리력으로 대응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통계 수집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 원인 진단과 범정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06년부터 범죄 분류 매뉴얼에 ‘불특정 동기 살인’ 항목을 따로 만들어 통계를 수집하고 있다. 일본은 무차별 살상을 ‘길거리 악마’라는 뜻의 ‘도리마’ 살인으로도 부르는데 법무성이 1993년부터 ‘범죄백서’를 통해 관련 통계를 내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정부 당국이 지금 나오는 사건들을 일부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본질을 진단하고 있어서 나오는 대안들도 조현병 환자 대책 등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국가 차원의 통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다”면서도 “미국은 ‘외로운 늑대형 테러’라는 용어가 있고 일본은 ‘히키코모리(외톨이)’에 대한 대책으로 접근한다. 이런 차원에서 범정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어떤 현상이 있으면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감소했는지 실태를 파악하는 게 대책 마련을 위한 방향을 찾는 데는 수월할 것이다. 결국 사회적 외톨이든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든 포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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