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게 반기는 야생화… 꽃길만 걸어요 [지방기획]
‘털부처꽃’ ‘백리향’ 등 韓 자생꽃 한자리
여의도 17.8배… 아시아 최대 규모 자랑
세계에서 단 2곳 뿐인 ‘시드볼트’ 보유
호랑이숲엔 암수호랑이 6마리 뛰놀아
해설사 곳곳 배치·유모차 등 무료 대여
입장료 일부 상품권 환급 현금처럼 사용
‘8월’이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고 녹음이 우거져 그늘이 반가운 계절이다. 휴가철과 여름방학을 맞아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관광을 즐기고 싶다면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여의도 면적(290㏊) 17.8배에 해당하는 5179㏊ 규모로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군락지가 매력적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매력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축제는 바로 여름과 가을에 열리는 ‘봉자페스티벌’이다. ‘털부처꽃’, ‘긴산꼬리풀’, ‘각시수련’, ‘백리향’…. 이름마저 정겨운 우리나라 대표 자생 꽃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축제는 여름꽃 탐구생활과 버블쇼, 산촌의 추억일기, 호랑이 인형극 등 어린이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입소문을 탔다. 지역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식물로 전시원을 꾸민 지역 상생형 축제로 의미까지 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 여름 축제는 만날 수 없다. 경북 북부를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무리하게 축제를 진행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다.
축제는 취소돼도 야생화는 이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관람 코스는 주로 트램을 이용하면 좋다. 이곳을 한 바퀴 돌려면 상·하행 트램을 포함해 2시간20분 정도 걸린다. 트램역을 출발해 단풍식물원을 지나면 시야가 탁 트이며 파란 하늘이 눈에 닿을 듯 다가온다. 바로 털부처꽃이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언덕이다. 피어 있는 꽃과 필 때를 기다리는 형형색색의 야생화 군락이 지천으로 널려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백두대간 능선에 자리 잡고 있어 다양한 고산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원은 다 돌기도 힘들 정도다. 주제에 따라 38개의 전시원을 마련했다. ‘돌담정원’과 ‘달래동산’, ‘고산습원’, ‘장미정원’, ‘나비정원’ 등이 대표적이다. 백두대간국립수목원은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산림종자 영구 저장 시설인 ‘시드볼트’를 보유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 재난과 전쟁 등 지구 대재앙으로부터 식물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고자 지하 46m에 설치한 영구 저장 시설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산림치유지도사와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교육전문가 등 전문 해설 요원을 곳곳에 배치해 편의를 제공한다. 유모차와 휠체어, 보행기도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어흥~” 자연 속 호랑이가 눈앞에
‘호랑이숲’은 수목원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축구장 4개를 합친 크기인 3만8000㎡의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곳이다. 호랑이숲에선 모두 6마리의 암수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한청’과 ‘한’, ‘우리’, ‘도’, ‘태범’, ‘무궁’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호랑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백두대간 자락에 숲 형태의 우리를 조성했다. 나무를 뛰어오르며 놀 수 있도록 목재 시설물을 설치했고, 호랑이들이 들어가서 쉴 수 있도록 인공 동굴도 만들었다. 여기에 나무 평상, 바닥 열선, 냉방 장치 등으로 꾸민 독실도 갖췄다.
호랑이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 마리당 매일 쇠고기와 닭고기 4∼6㎏의 특식을 먹는다. 호랑이의 일과는 꽤 단순하다. 오전 10시쯤 방사장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밤사이 자신의 영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점검 차원에서 둘러본 뒤에는 보통 편한 곳에서 하루 20시간 가까이 잠을 자기도 한다고 했다.
휴가에서 돌아올 때 사 오는 신선한 농산물은 농촌 관광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봉화군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입장료 일부를 봉화사랑상품권으로 환급해 주고 있다. 입장료 환급 사업은 봉화군을 찾는 관광객의 비용 부담을 경감하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환급 대상은 일반 유료 관람객이다. 입장료 결제 시 1000원을 봉화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다. 환급받은 봉화사랑상품권은 봉화군 내 음식점을 포함해 전통시장, 주유소 등 봉화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여행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어딜 가 볼 것이냐’의 문제만큼 중요하다. 봉화를 찾았다면 무엇보다 ‘송이’를 맛보길 추천한다. 봉화 송이는 태백산 자락의 마사토 토양에서 자라 수분 함량이 적어 오랫동안 보관하기 좋다. 쫄깃한 식감과 뛰어난 향으로 송이 중 최고로 취급받는다.
송이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 중에서도 ‘송이밥’은 여행객은 물론 현지인 사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돌 뚜껑을 열면 향긋한 송이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특징이다. 참나물과 묵은 김치 등 다양한 나물 반찬과 함께 먹다 보면 보약 한 제를 먹은 것처럼 건강해지는 느낌이 절로 든다.
◆한창술 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 “지역 사회와 상생 가능한 사업 모델 개발 매진할 것”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 본 사람은 없습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선 봉화군 춘양면은 ‘춘양목’으로 유명하다. 춘양목은 예로부터 문화재 복원용으로도 쓰인다. 소나무의 겉껍질에 붉은빛이 돌아 적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춘양목이란 이름은 집산지인 춘양면의 지명에서 유래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봉화군 내에서도 춘양목이 많은 백두대간 문수산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원장은 “문화재청이 특별 관리하는 1500여그루의 춘양목이 수목원 내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면서 “다른 수목원에서는 느낄 수 없던 드넓은 공간의 자생식물 군락지가 자연 그대로 곳곳에 펼쳐져 있어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원장이 수목원 운영에서 가장 중점을 둔 목표는 바로 ‘상생’이다. 수목원의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고자 지역 주민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판로 확보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는 “그동안 지역 농가의 위탁재배를 통해 생산한 자생식물을 전시하는 봉자페스티벌을 개최해 지역 상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면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어떤 수목원을 만들고 싶을까. “몸과 마음의 치유 명소로 자연과 사람 간의 고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힘줘 말하는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봉화=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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