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공기관에 민간까지…“전시 총동원하나” 불만 속출

정부, K팝 콘서트 지원 1000명 요청…“태풍 대비도 바쁜데”
숙소 제공 기관 등 생고생…식당 운영 중단에 학생들 불편도
여권 “국격 걸린 일” 당위성 강조에 “국가주의적 사고” 비판

의용소방대원들 나서 야영지 뒷정리 전라북도 의용소방대원들이 9일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당시 식당으로 사용되던 시설물에서 쓰레기를 줍고 집기류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에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기업·연예인 등을 가리지 않고 전시 군사작전식 동원을 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국가주의적 사고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최근 잼버리조직위원회 요청을 받아 40여개 공공기관에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팝 콘서트를 위해 약 1000명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무원은 “(잼버리가 끝나는) 12일까지 일 다 스톱하고 수천명의 공무원이 잼버리에 매달리는 게 맞느냐”고 썼다. 한국마사회 직원은 “사고는 정부에서 치고 똥은 공공기관 동원해서 치우느냐”며 “전시동원령”이라고 했다. 한국산업은행 직원은 “공무원, 공기업 직원은 5분 대기조냐”라고 비판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강제동원해놓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란다”고 적었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A씨는 통화에서 “태풍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부 잼버리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했다.

숙소 등을 제공한 민간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스웨덴 참가자 753명이 갑자기 우리 대학에 배정되는 바람에 휴가자를 제외한 전 직원이 총출동해 마치 군부대의 비상훈련하듯 이들을 맞았다”며 “유관기관들은 정확한 도착시간, 도착 후 우리가 이들에게 어떻게 방 배정을 해야 할지, 식사는 어찌 제공해야 할지, 11일까지 머무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지침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대에서는 잼버리 참가자 식사 제공을 이유로 학생식당 운영을 중단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한 건설사 직원 B씨는 블라인드에서 “관련 부서는 급히 프로그램 제작하고 텐트 등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건설사는 회사 연수원을 잼버리 참가자 숙소로 제공했다.

전시 국가총동원령에 버금가는 상황에 대해 여권에서는 국가 위상이 걸린 일이라며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은 이날 BBS 라디오에 출연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K팝 콘서트 무대에 일부 멤버가 군복무 중인 방탄소년단(BTS)이 “국격을 높일 수 있도록” 공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건의했다가 팬들의 뭇매를 맞았다. 같은 당 이용호 의원은 당초 콘서트 예정지였던 전주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프로축구 전북 현대 팬들이 콘서트 개최를 비판하자 “부끄럽고 실망스럽다”는 SNS 글을 남겼다가 삭제했다.

사회학자 조형근 박사는 “군부독재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군사작전식으로 할당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사기업까지 총동원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국가와 사회의 영역이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무원 C씨는 “공공부문에서 차출하는 건 불가피하다. 일단 힘을 모아 수습하는 게 우선 아니겠느냐”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가가 망신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공무원의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말했다.

정대연·이두리 기자 ho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