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엉망진창’ 새만금 잼버리의 역설적 교훈
파란만장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예상치 못한 태풍 ‘카눈’의 진로로 새만금에서 철수하며 사실상 조기 폐막했다. 11일 서울에서의 공식 폐영식과 ‘K팝 콘서트’만을 앞두고 있다. 엉망진창의 끝판왕. 이번 대회는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부실 종합세트였다. 더이상 망신, 졸속, 난장판 등의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놀랄 정도로 닮은 새만금 사업 추진과 이번 잼버리 사태에서 생각해볼 몇 가지를 짚고자 한다.
#1. 누굴 위한, 무엇을 위한 행사였나
최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북도는 2018년 발간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활동 보고서에서 잼버리 후보지 결정 이유로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8월8일자 3면). 잼버리는 새만금 개발을 위한 들러리였던 셈이다. 잼버리는 도로·공항·철도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을 받아내는 유용한 카드이기도 했다. 부지 매립 예산 조달을 쉽게 하려고 야영지의 용도는 농업용지로 바꿨다. 행사 후엔 농업용도로 반환해야 하니 애초에 배수 문제는 뒷전이었다.
새만금 사업이 딱 그랬다. 애초 계획은 쌀이 부족하던 시기, 간척사업을 통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거였다. 1987년 대선 일주일 전 노태우 후보가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급조한 공약이었다. 그러나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했고, 쌀 소비는 줄며 농지 자체가 불필요해졌다. 100% 농지개발 취지는 사라지고 새만금 개발은 길을 잃었다. 선거 때마다 각종 개발 구호만 난무했다.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잼버리 개최안이었다.
#2. 위험 알면서도 ‘안 되면 되게 하라’
연일 폭염특보 속, 한쪽에선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경보문자를 보내면서, 다른 쪽에선 10대 청소년들을 뙤약볕에 방치하며 대규모 행사를 강행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더위를 피할 곳도, 의료진도 부족한 야영장, 위생도 불량하고 음식도 부실한 상황에서 대회 나흘째, 세계스카우트연맹이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행사기간 단축을 권고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도 대회 중단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지만, 조직위는 강행할 뜻을 밝혔다. 후진국형 안전불감증이다. 조기 철수한 국가들의 결정이 당연한 것 아닌가.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외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어른들의 고집으로 각국 청소년들이 고생했다. 참으로 미안하다.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물막이 공사 이후, 모두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방조제에 갇힌 물은 썩어들어갔다. 희귀 생물들이 사라져갔다. 어부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2000년대 초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전국적인 삼보일배의 탄원. 그러나 잘못 접어든 궤도의 수정은 없었다.
#3. 예산 들여 웬 망신, 손해 막심인가
많은 국민들이 한탄한다.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하질 말지. 새만금이 그 모양이다. 당초 1조3000억원을 들여 2004년 간척 완료 계획이었으나, 예상 사업비는 수십조원으로 늘었고, 공사기간도 기약할 수 없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단군 이래 최대의 계륵”이라고 했다. 시인이자 작가인 김택근은 “최대의 바보 공사”라고 했다. 그는 “새만금을 계획대로 개발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또 그대로 방치하면 주민들과 여론의 매를 맞을 것이다. 그러하니 다시 적당히 시늉만 낼 것이다. 새만금 소금밭에는 재앙이 썩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고 개탄했다(경향신문 2019년 12월7일자 ‘새만금 갯벌의 저주’).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새만금 개발사업 기간 동안, 농지 가치는 떨어지고 우리가 메워버린 그 갯벌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갯벌은 탄소흡수원으로선 세계적으로 독보적 수준이라고 한다.
갯벌을 메운 땅 위, 폭염과 폭우 속에서 온갖 난장판을 겪으며 진행된 이번 행사는 역설적으로, 애써 가르치지 않고도 기후위기의 심각성, 생태와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각인시켰다. 잼버리 청소년들이여, 2023년 8월의 숨막히는 무더위를, 주먹구구 개발의 대가를 오래도록 잊지 마시라.
그리고, K팝 콘서트도 좋지만, 감독이 여러분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낸 영화 <수라>를 보고 돌아가길 권한다. 새만금에 마지막 남은 아름다운 수라갯벌과 그 안에 사는 생명들을 그린 영화다. 잼버리를 열려면 공항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우겨 허가를 받고, 잼버리가 끝날 때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한 공항을 끝내 착공하겠다는 바로 그 땅, 그 갯벌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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