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기자 2023. 8. 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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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나비는 저만 보면 웅얼웅얼, 말이 참 많습니다. 덩치 큰 녀석이 삐악삐악 병아리 소리까지 내는데, 흡사 무언가 일러바치는 모양새입니다. 나 없는 동안 누가 꼬집기라도 한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보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 걸까요? 한 번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겠지만, 말 못하는 동물이니 안타깝습니다. 동물병원에선 아픈 동물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보호자와 수의사가 일치단결, 탐정이 되었다가, 독심술을 부렸다가 합니다. 특히 심폐소생술 여부나 연명치료, 위험한 수술이나 항암치료처럼 합리나 필요에 앞서 환자의 의향을 알고 싶을 땐 난감합니다. 수의사는 함부로 추천할 수 없고, 가족들은 함부로 결단할 수 없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짚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우리가 안타까운 만큼, 혹여 그들은 말을 못해 억울한 일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가수 장필순님의 반려견 ‘까뮈’가 애견호텔에서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사인은 열사병이라 알려져 있지만 확언은 어렵습니다. 응급처치를 위해 동물병원에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의사의 소견이나 진단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원인이 열사병이든, 다른 무엇이든 애견호텔의 부주의가 있었다면 문제입니다. 말을 못하는 동물이니 더욱 유심히 살폈어야 합니다. “더워요” “몸이 이상해요” 한마디만 할 수 있었더라면, 까뮈는 지금 가족들 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못해 억울한 동물을 만든 부주의이기에 문제입니다. 기사와 댓글들을 보자면, 말에 말이 더해져 사실과 소문의 경계, 슬픔과 분노의 경계, 사과와 변명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말을 못해 답답했을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없이, 말만 많은 우리가 그 억울함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1991년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 생명존중 등 국민의 정서함양에 이바지’한답시고,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입법부는 매번 시류에 떠밀리는 개정을 거듭하고, 행정부는 제대로 된 시책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사법부는 동물의 학대나 유기에 관련한 양형기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법은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고자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물보호법’ 또한 억울한 동물이 없게 하고자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들의 억울함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을리하고 있기에, 말 못하는 동물들을 위한다는 법마저, 말만 많은 우리가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동물들마저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겠지요. 동물들의 억울함마저 살피다 보면, 그래서 좋은 세상이 오면, 사람들은 그 누구도 억울한 일, 분한 일 겪지 않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장필순님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달라고 노래했습니다. 말로 부르지 않고 외로움으로 그저 불러도, 말 못하는 그들은 언제라도 찾아와줍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말을 못하기에 더 세심히 살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조금이나마 공평하려면 우리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감히 억울해하고 있을 수많은 까뮈들과,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많은 장필순님들에게 위로와 사과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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