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돌아보기]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발령받은 지 2년 된 젊은 교사가 자신의 학급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신이 날마다 출근하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마음이 어땠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교사들이 이번 죽음을 남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매년 힘든 아이들을 교실에서 만나고 학부모 민원으로 힘들어한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은 ‘나의 말과 행동이 혹여 민원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잘못해서 아동학대로 신고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상이 되었다. 너무 힘들어 교직을 그만두고 싶은 젊은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권은희 의원실이 밝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1년간(2022년 3월∼2023년 4월) 5년차 미만 퇴직 교사는 589명으로 전년(2021년 3월∼2022년 2월) 303명의 두 배 가까이 됐다.
2020년 발표된 ‘특수교육 통계 국제비교 연구(국립특수교육원)’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특수교육 대상자는 1.6%(9만5420명)인데 호주는 18.8%, 미국은 14.1%, 일본은 5.0%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달리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특수교육 대상자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낙인효과 때문에 특수교육을 주저하거나 특수교육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까다롭다.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지적능력(IQ)이 정상 수준이면 특수교육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할 많은 학생들이 일반 교실에 머물게 된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품행장애 유병률은 평균 4%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품행장애(파괴적이거나 도전적인 행동의 증상 포함)는 10~14세의 3.6%와 15~19세의 2.4%에서 발생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다. 2022년 기준 초·중·고 학생 수는 약 528만명이다. 유병률 4%를 적용해 보면 품행장애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학생 수는 약 21만명으로 추정된다.
교실 안에 많은 갈등이 여기서 시작된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진 전문성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학생들이 교실에 너무 많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되는 원인을 교사들의 탓으로 쉽게 돌린다. 부모들의 많은 민원이 여기서 발생한다. 정서지원 교사의 배치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7530명의 초·중·고 교직원이 전담 공무원의 아동학대 판단으로 직위해제를 당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아동학대 신고 건수 중 아동학대로 판단한 건수는 평균 70.76%이다. 이 데이터를 적용하면 같은 기간 동안 초·중·고 교직원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약 1만건으로 추정된다. 2022년 기준 초·중·고 학교 수는 1만1974개교이다. 전국의 교사 대부분이 자신의 학교나 주변 학교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경험할 수 있는 수치이다. 아동학대 신고는 교사들에게 상존하는 두려움이다.
최근 사건들을 통해 밝혀진 것은 학급의 민원을 교사 혼자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화에서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교장실로 보내지고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학교장과 상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는 담임이 혼자 민원을 감당하고 있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필자는 오래 기간 교사운동을 해왔다. 혹여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왔던 모든 일의 결과가 지금의 잘못된 시스템을 만든 것은 아닌지 두렵다. 함께 열심히 하자고 외쳤던 그 말들이 어리석었던 건 아닌지 돌아본다.
나이가 50이 넘었고 사회에 책임 있는 자리에 서 있는데 신규 교사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정부는 해결책을 만들기보다는 ‘학생인권조례’ 존폐 논리로 진영 갈등을 부추긴다.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지 걱정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뿐이다.
홍인기 교육정책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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