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지평 너머] ‘개탄스러운 사람들’과 ‘미래가 짧은 분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2016년 9월9일. 대부분의 언론에서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뉴욕 맨해튼에서 성소수자 단체가 마련한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이 ‘개탄스러운(한심한) 사람들(A basket of deplorables)’이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이들이 인종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여성차별주의자, 이슬람 및 외국인 혐오자들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일자 힐러리는 ‘절반’이라는 표현은 실수라고 인정하며 유감을 표했지만 ‘개탄스러운’이라는 표현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대학(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한 진보 성향의 힐러리 관점에서 그런 트럼프 지지자들이 개탄스럽게 보이는 것은 있을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치열한 대선 레이스 중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격적으로 표출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힐러리는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주의 깊게 보려 하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몰아친 신자유주의 변혁 속에서 힐러리 같은 전문직과 관리직 엘리트층은 과실을 독차지하며 번성하고 있었다. 반면 그 번영에서 소외된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아메리칸드림이 산산조각 났다. 이들이 얼마나 좌절 속에서 분노하고 있는지 힐러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힐러리의 발언은 미국의 쇠락한 백인 노동자들을 더욱 트럼프 쪽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결국 그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개막했다.
자신과 이념이나 생각이 다른 이들은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라 여기는 진보개혁 엘리트들의 오만과 편견이 사달을 부르는 것은 종종 보는 일이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청년 간담회에서 “미래가 짧은 분들”이라며 노년층의 투표권을 폄훼하는 언급을 한 것도 유사한 사례다. 힐러리의 ‘개탄’ 발언은 대선 패배로 이어졌고,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불거진 논란은 혁신위의 존립 근거를 흔들고 민주당 전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의 노년층은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급과 처지가 비슷하다. 둘 다 지난 세기에 가족과 회사,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사회적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적, 절대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고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신세가 돼 있다. 특히 한국 노년층의 경우 유교적 전통이 약화되면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변한 것이 좌절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런 토양에서 합리적이고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생각들이 싹트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에게 노년층은 우군이 아니다. 노년층이 인권이나 성평등, 분배 정의 등의 진보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층이 선거 때마다 보수세력에 표를 몰아주고 있으니 더더욱 이쁘게 보일 리 없다. 이번 노년층 투표권 논란도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 진보개혁 세력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런 인식이 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며 과거의 생각과 가치에만 꽁꽁 묶여 있는 노년층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해보려 하지 않고 외면만 한다면 끝없는 혐오가 반복될 뿐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노년층의 표를 어떻게 얼마나 끌어올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영, 노사, 남녀, 세대가 극단적으로 분열돼 혐오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뜻이 맞지 않는 집단도 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빈곤 퇴치 연구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부부는 “개탄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 귀를 닫고 더는 듣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사람들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어 하기 마련이므로, 나의 가치 판단을 상대에게 부여하기 전에 먼저 상대가 스스로의 가치를 긍정하게 하는 것이 상대의 편견을 줄이는 더 좋은 방법”(<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착하게 행동해야 해”보다 “너는 착한 아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착한 아이를 만드는 데 더 유효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생존 보장을 넘어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존엄성을 잃은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지금 충분히 실패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겸허하게’ 새겨둘 만한 얘기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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