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덥다, 그래도 가을이 들어선다
덥다. 2020년 기상청 보고서를 보면 지구 평균 온도는 14.88도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200여 관측소에서 그해 측정한 온도를 모두 참작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지난 20세기 전체 평균보다 0.98도 높은 값이다. 올 7월3일은 남극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 온도가 17도를 넘어 역대 최곳값을 나타냈다. 평균 온도는 한 값을 가리키지만 지역에 따라 또는 같은 지역이라도 사는 거주 형태에 따라서 체감 온도는 천차만별이다.
바깥 기온이 같아도 오래된 집 실내 온도는 더 높게 느껴질 수 있다. 이동식 주택이나 컨테이너, 옥탑방이나 반지하 작은 집도 상황이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곳이 더운 이유는 복사열 탓이다. 모닥불을 피웠을 때 우리 몸에 전달되는 따뜻함의 실체가 바로 저 복사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형태로 복사열이 주변에 퍼진다. 단열이 잘되지 않는 옥탑방의 천장은 뜨겁다. 창문, 시멘트벽, 바닥 모두 우리를 둘러싼 표면이고 복사열로 집 안 공기를 달군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기는 관측소에서 잰 바깥 공기 온도가 아니라 좁은 공간의 평균 복사열이다.
인류가 사는 지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구 표면에서 방출된 적외선이 곧장 우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평균 온도가 영하 19도인 차가운 행성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지구는 ‘평균적으로’ 그리 춥지 않고 살 만하다. 이산화탄소 덕분이다. 지구 표면에서 방출된 적외선 복사열이 이산화탄소 온실가스에 갇혀 지구 온도를 무려 30도 넘게 높인다. 천왕성을 발견한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태양광을 분석하다 우연히 적외선을 발견했다. 프리즘 빨간색 선 옆에 둔 온도계 눈금이 올라간 것이다. 붉은 가시광선 너머 전자기파가 적외선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겨울날 양지바른 곳이 따스한 까닭은 바로 적외선 덕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복사열 덕분이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전자기파를 내놓으며 에너지를 방출한다. 태양도 마찬가지다. 용광로에서 붉게 달군 쇠는 파장이 짧은 고에너지 전자기파를 내놓는다. 표면 온도가 6000도에 이르는 태양 빛이 뜨거운 것은 가시광선 말고도 적외선을 끊임없이 방출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흑체(black body)는 외부에서 오는 빛을 모두 흡수했다 다시 방출하는 물체를 뜻한다. 태양, 지구 모두 흑체의 성질을 갖는다. 흑체가 복사하는 전자기파는 주로 온도에 의존하는 값이다. 태양처럼 뜨거운 흑체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과 가시광선 및 적외선을 내놓는다.
하지만 지구는 위도와 밤낮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양 에너지가 양적으로 다르다. 적도에는 볕이 뜨겁고 극지방에는 인색하다. 그렇게 생긴 온도 기울기를 해소하고자 바람이 불고 해류가 흐른다. 달군 쇠를 가만 놔두면 식어 차가워지듯 지구도 받은 열을 우주로 내보낸다. 평균적으로 받은 만큼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는 온실 기체가 있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혹은 메탄 같은 온실기체가 태양 에너지 머무름 시간을 늘려놓은 탓에 대차대조표가 복잡해진다. 식물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식물이 만든 유기 화합물이 토양 깊숙이 묻히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태양 에너지는 지구에 길게는 3억년 넘게 체류하게 되었다. 산소는 대기권을 그득히 채우고 오존층을 형성해 대형 동물이 살 만한 곳으로 지구를 재편성했다. 공룡이 나타났다가 죽고 그들의 발자국을 피해 살던 야행성 포유류가 득세하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질학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지구가 받고 내보내는 태양 에너지는 안정한 균형 상태를 유지했다.
성질 조급한 영장류가 꼬리를 버리고 두 발로 서면서 상황은 조금씩 변했다. 불을 피우고 음식 속에 든 영양소를 옹골차게 뽑아 쓰게 되자 소화기관 크기는 줄고 대신 그들의 뇌가 커졌다. 게다가 인류가 검은 진주인 석탄을 발견하자 세계는 급변했다. 수억년 땅속에 머물렀던 태양 에너지가 본래 모습인 이산화탄소로 되돌아간 것이다. 지구의 에너지 시계 리듬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빠르게 늘면서 지구가 뜨거워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온실기체를 덜 내보내는 일이다. 잎을 틔워 지표면에 그늘을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바꾸는 식물이 어찌 태양을 대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침나절 그늘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가을이 들어선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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