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여행
휴가철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하기 힘들었던 지난 수년간에 비해서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 삶과 일상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은 대부분 한 개인의 생애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갖는다. 그것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된다. ‘여행’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는 전통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여행과 무관한 삶을 살았으리라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처한 형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했다. 조선시대에 쓰였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많은 여행일기가 그 증거이다. 대부분 한자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여행기 필자 대다수는 양반이다. 하지만 양반이라 해도 대개는 자기 동네에서나 알아주는 한가한 시골양반들이 대부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면 여행하기 어렵다.
선호된 여행지는 다양했다. 고려의 수도 개성, 조선의 수도 한양은 각광받는 여행지였다. 오늘날 우리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를 방문하듯이 당시 조선인도 그랬다. 도시뿐 아니라 멋진 자연도 여행의 목적지여서 지리산, 설악산, 속리산 등도 선호되는 여행지였다. 무엇보다 가장 선호되는 여행지는 역시 금강산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금강산 여행의 코스도 다양했다.
안동에 살았던 이시선(1625~1715)은 1686년 8~9월 62세 나이로 한 달간 아들과 손자를 동행하여 금강산을 여행했다. 이들은 죽령을 넘고 강원도 김화를 거쳐 이제는 북한이 된 회양을 지나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의 관문인 장안사에 도달했다. 표훈사를 거쳐 만폭동과 비로봉을 관람하고 고성 해산정, 영랑호, 의상대, 경포호를 거쳐 삼척의 진주관, 죽서루까지 내려갔다고 기록했다.
현재의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살았던 이동항(1736∼1804)은 친구들 몇명과 55세 되던 1790년 3~5월 해금강과 내금강, 외금강을 여행했다. 그들은 일단 한양에 올라와서 여행을 준비했다. 그런 다음 포천을 거쳐 현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 창도리에서 금강산 장안사로 들어갔다. 이어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을 두루 둘러보고, 낙산사→신흥사→백담사→오세암→인제→청평→춘천→안보역→황사곡→망우리로 돌아왔다. 두 달 가까운 여행이었다.
여행기 필자들에게 그 여행은 특별했다. 지금처럼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다. 대개는 거의 평생을, 최소한 수년을 벼른 여행이었다. 여행일기 속에는 드물지 않게 여행일기를 작성한 이유가 나온다. 그들은 훗날의 ‘와유(臥遊)’를 위해서 기록을 남긴다고 썼다. ‘누워서 유람(遊覽)한다’는 뜻이다. 즉 집에서 느긋하게 누워 여행일기를 들춰보며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려고 기록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브이로그(VLOG)를 작성하며, 유튜브를 찍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여행이 그들의 여행과 다르다면, 국외여행을 그들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매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국외로 여행을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은 한 세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조건에서 여행을 할 수 있다. 좋은 일인지 아닌지 좀 헷갈리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물가가 높아져서 몇몇 곳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나 국내보다 물가가 비싸다는 느낌 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현실이 쾌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쁜 일보다는 언짢고 번거로운 일들이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영양, 건강, 안전, 교육 등 우리 삶의 구체적 조건들은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과거보다 크게 개선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여기에 포함이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은 우리의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수단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 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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