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순살 아파트’와 ‘전관 특혜’를 없애려면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서 촉발된 이른바 ‘순살 아파트(철근 없는 아파트)’ 사태를 보면서 든 의문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였다. 그러면서 ‘왜 38명의 목격자는 한 여인의 피살을 외면했는가?’라는 ‘방관자 효과’가 먼저 떠올랐다. 범죄 현장을 목격했을 때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나 말고 다른 이들도 많은데 하는 마음과 함께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도 아닌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과 연관된다. 만일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곳에서 자신이나 가족이 생활한다면 모른 체했을까?
유치원생·인솔교사·강사 등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경기 화성 씨랜드 참사 당시 희생된 아이의 어머니 중에는 필드하키 선수로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면서 “누구든지 거기 가서 묵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각성만으로 부실공사를 예방하기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부실공사 현장을 목격하고도 말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이익을 당하게 되거나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 터미널 공사 현장에서 3년간 감리원으로 일하던 A는 2000년 기자회견에서 “내화·불연·방수처리자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등 부실사례와 부적절한 설계변경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으나 감리단이 이를 덮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최우수 감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제보자는 평생 업으로 삼았던 건설업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 구청에서 발주한 공영주차장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B는 기둥 안에 넣는 철근을 당초 견적서상 국산이 아니라 강도는 약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으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구청 감사부서에 신고했다가 “일하러 나오지 말라”는 통보와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역사회 공사 현장에서 아예 부르지 않게 됐다.
이처럼 부실시공을 세상에 알렸다가 퇴출당할 수 있기에, 특히 인맥이 끈끈하게 작용하는 건설현장에서의 제보는 그 업종에서 영원히 ‘아웃’될 수도 있기에 제보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순살 아파트’ 사태를 계기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관련 업체 취업 등 ‘전관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LH는 반(反)카르텔 및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조직을 설치하고, 서울시는 건설현장에 CCTV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또 부실사태가 발생하면 기대이익의 10배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금 10%를 공사업체가 제보자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선 신고자에 대한 보상금이 있으나 몰수 또는 추징금 부과, 과태료 또는 이행강제금 부과, 과징금 부과 등이 이뤄졌을 때 금액에 따라 일정 비율을 지급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실제 부과되는 과태료나 과징금 규모가 얼마 되지 않기에 일반 시민이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내부자가 보상금을 기대하고 제보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필자가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조직에서는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비밀보장·신분보장 등이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보상금 역시 연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제보와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공사현장 붕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제보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사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1, 현장을 벗어나면 10,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면 100의 원가가 든다는 ‘페덱스의 1 대 10 대 100 법칙’처럼 부실사태가 발생하고 난 뒤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사 현장에서의 적발을 통한 궁극적 예방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지문 사단법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연세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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