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도 블랙핑크"… K팝 댄스부터 홍대 버스킹까지 젊음 불태운 잼버리

김표향 2023. 8. 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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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체험·템플스테이 등 프로그램 풍성
태풍 전 야외활동 유일…10일은 실내활동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코스타리카 대원들이 9일 서울 마포구 YGX 아카데미를 찾아 케이팝 댄스를 배우기에 앞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 원 앤 투 따단단, 둘 셋 넷, 원 딴 따!”

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YGX 아카데미. 이곳은 아이돌그룹 블랙핑크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댄스 학원이다. 연습실에 블랙핑크 멤버 지수의 솔로곡 ‘꽃’ 멜로디가 울려 퍼지자 코스타리카 소년ㆍ소녀들이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강사가 간단한 시범 동작을 보인 뒤 박자만 읊었는데도 곧잘 따라 했다. 거울 속 춤추는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운 듯 연신 “꺄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익숙한 후렴구가 나오자 수줍게 흥얼거리기도 했다. 어느새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한 코스타리카 대원 40여 명이 YGX 아카데미에서 K팝 댄스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에 앞서 스트레칭할 때부터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더니, 수업이 끝날 즈음엔 칼군무가 거의 완성됐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류(hallyu)’라 적힌 손팻말을 깜짝 들어보인 대원도 있었다. 소년 대원 호수헤(17)는 “원래 지수 팬이었는데 춤을 직접 배워 보니 블랙핑크와 친구가 된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태풍 전 마지막 야외활동

9일 청와대를 관람한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카우트 대원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제6호 태풍 ‘카눈’ 상륙 예보에 전날 새만금을 떠나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전국 8개 시도에 여장을 푼 잼버리 참가자 4만여 명은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3박 4일 ‘K컬처’ 체험에 나섰다. 태풍 상륙 전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날이라 그런지 이들의 발걸음은 더 분주해 보였다.

낮 12시 즈음 청와대 앞마당에도 대형버스가 연달아 들어왔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레바논 스카우트였다. 삼삼오오 모인 대원들은 본관에 마련된 역대 한국 대통령에 관한 전시물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노르웨이 대원 베니(16)는 고국에선 경험하지 못한 무더위에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도 “날씨가 좀 따뜻하다”고 농담을 하며 “한국에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 무리 소녀는 청와대 경호원에게 수줍게 다가가 “함께 사진 찍고 싶다”고 말을 붙였다가 “경호원은 얼굴이 공개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폭염 속 야영과 태풍으로 인한 조기 철수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도 대원들은 의젓했다. 지나가던 한국인 관람객이 “어린 학생들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위로를 건네자, 한 소년은 “우리는 전혀 힘들지 않다. 한국에 또 오겠다”며 도리어 안심시켰다.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9일 서울광장에서 건너편 덕수궁으로 건너가기 위해 횡단보도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다. 오세운 기자

서울광장에도 교류의 장이 마련됐다. 언제든 들러서 문화 프로그램 안내를 받고, 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공간이다. 태풍 탓에 일단 임시 부스가 설치됐지만, 추후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지를 잇는 순환형 셔틀버스에도 각국 대원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첫 탑승객인 이탈리아 스카우트 비올라(16)는 “야영장에서 멕시코, 칠레 등 다양한 나라 친구들과 친해졌는데 헤어져 슬펐다”면서도 “서로 교환한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서울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과 미래가 만나다

9일 인천시 연수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탑 앞에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핀란드와 필리핀 대원들은 북적거리는 도심을 떠나 호젓한 사찰을 찾았다. 경기 성남 대광사에서 진행 중인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타종, 명상, 공양 등 한국 전통 불교문화를 체험했다. 이들은 미륵보전에 모셔진 17m 높이 불상이 신기한 듯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스카우트 지도교사는 “일부 대원들은 야영장을 떠나는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새로운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새만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고 귀띔했다.

인천에 짐을 푼 벨기에ㆍ세르비아ㆍ팔레스타인ㆍ리비아 스카우트는 한국의 미래를 탐험했다. 첨단 바이오산업 시설인 셀트리온2공장, 송도국제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송도 G타워 등을 견학하며 한국의 발전상에 놀라워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다양한 문자로 기록된 코란과 성경 전시물을 둘러보며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영국 스카우트 단원들이 8일 서울 홍대 앞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마포구 제공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는 20~40명씩 소규모 그룹을 지어 각자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팀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찾아 헌화와 묵념을 하고 영국인 참전용사 5만6,000여 명을 기렸다. 전날에는 24개 팀이 서울 홍대 앞에 꾸며진 무대에 올라 버스킹 공연도 했다. 즉석 참가 신청이 많아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끝났다는 후문. 공연에 참여한 한 대원은 “황홀한 도심 야경 속에서 노래하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며 즐거워했다.

10일에는 강풍과 폭우가 예보돼 있어 잼버리 활동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태권도 강습, 전통공예 체험, e스포츠경기장 견학, K뷰티 탐방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고, 경기도는 경기아트센터 공연, 전통문화관 예절 체험, 미술관ㆍ박물관 관람 등을, 인천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관람, 삼성바이오로직스 견학, 쇼핑 체험 등을 준비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가 대원들에게 태풍 진행 상황과 행동 요령을 전파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잼버리 대원들이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웰컴 투 서울 댄스나이트' 행사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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