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쓰고 책임은 전가 잼버리서 본 지자체 민낯
각종 부실 운영으로 파행을 겪은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중앙부처·산하기관·대학·기업들이 합심해 막판 수습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한국 지방자치 역량의 초라한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 세금 74%를 쓰고 '툭' 하면 지방정부로 중앙정부 권한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넘겨받은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사고가 터지면 중앙정부 탓으로 일관하는 사이 조만간 도입 30주년을 맞는 지방자치제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9일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구현하는 정부다. 잼버리는 전북도가 주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중앙정부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소모적인 정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적었다.
박 의장은 1991년 '강원도 고성 잼버리'를 중앙정부가 주관했던 점을 언급하며 "(새만금 잼버리는) 지방정부가 잘할 거라고 해서 중앙정부는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지방정부가) 재정 및 규제 권한을 넘겨 달라고 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번 잼버리를 보면 씁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들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런 박 의장의 지적은 이번 잼버리 운영 미숙으로 여실히 드러난 지방정부 행정력의 현주소를 꼬집은 것이다. 여성가족부 등 중앙정부는 이번 대회 준비를 전북도에 일임하고 예산만 지원해왔는데, 사고가 터지자 비난의 화살은 온통 중앙정부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새만금 잼버리를 이유로 떠난 해외 출장은 총 101건인데 전북도가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안군 25건 등이었다. 이러다 보니 '돈을 쓴 곳 따로, 책임지는 곳 따로'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與 "이럴거면 지방자치 왜 하나"
그간 자나 깨나 지방정부 권한 강화를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이 잼버리 대원들이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국정조사 카드부터 꺼내 들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9일 오전 당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잼버리와 관련된 물음에 "당연히 국정조사 사안"이라며 "국가 시스템 문제면 오히려 국민의힘에서 국정조사를 하자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처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내놨다. 박 대변인은 "이 장관도 잼버리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인데 여성가족부 뒤에 숨어 모든 책임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이 장관에 대해서도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여야는 임시국회가 열리는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잼버리 관련 현안 질의를 진행할 예정인데, 본격적인 책임 공방으로 번질 태세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정쟁으로 흐르면 지난 수십 년간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추진해왔던 지방자치제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2025년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2021년 세출 기준으로 국민 세금의 74%를 지방정부가 쓰고 중앙정부는 26% 정도를 쓰고 있다. 쉽게 말해 지방자치제가 성장 단계를 넘어 성숙 단계로 들어서는 문턱에 있는 셈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시대 정부'를 선언하고 재정과 권한을 지방정부에 전폭적으로 이양했다"며 "(잼버리 사태 수습을) 도와준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난한다면 앞으로 지방자치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이 잘못됐다고 도와준 중앙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면 지방자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잼버리 조직위원회 구성) 대부분이 전라북도 관련 단체로 돼 있다"면서 "여가부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들어가 있지만, 전북도지사가 집행위원장으로서 모든 행사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형식으로 운영돼 왔다"고 전북도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잼버리 행사는 전라북도가 주도하고 중앙정부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왔는데, 이후 논란이 일자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는 "권한과 예산을 줘도 얼마나 부패가 심했으면 이렇겠느냐"며 "전북도가 철저히 책임을 자각할 의사가 없으면 지방자치의 미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지용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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