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얻어맞는 교사…'방탄' 인권조례 손본다

유효송 기자 2023. 8. 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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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균형 잃은 인권의 역습] ③책임 없이 '권리'만 앞세운 학생인권조례
[편집자주] 인권은 보편적이지만 가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인권 논리를 앞세운 권리 남용에 공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공권력은 무장해제됐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약자를 보호할 균형잡힌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교권 추락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여당은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교사의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기로 했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중 학생(학교)인권조례를 시행하는 곳은 현재 서울과 경기, 인천, 충남, 광주, 전북, 제주 등 7곳이다. 이 중 개정 검토 의사를 밝힌 곳은 서울과 경기, 광주, 전북 등이다. 인천은 '학교구성원인권조례'로 명칭을 바꿨다.

세부적인 내용은 시·도 별로 차이가 있으나 학생의 사생활 보장, 체벌 금지 등이 핵심 조항이다. 인권조례는 과거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사제 관계에서 벗어나 학생의 인권을 대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학생이 욕설과 폭행을 하는 것도 교사들이 수인해야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교육부가 지난 3일 공개한 교원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권침해 사례가 증가하는 이유'(3개 복수선택)를 묻는 질문에 23.8%(1만6037명)가 '교권에 비해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를 꼽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총리는 지난 4일 "교사가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이 곤란하고 학생 간 사소한 다툼을 해결하는 데 나서기 어려워지는 등 학생인권조례로 교사의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시도교육청과 함께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했다.

교육계에서 인권조례의 사각지대로 지적하는 부분은 학생의 '책임'에 대한 부분이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의 기틀이 된 미국 뉴욕시 '학생 권리장전(Student Bill Of Rights)'은 학생의 권리와 책임을 구분해 명시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조례에서는 책임과 의무의 균형추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뉴욕시의 학생 권리장전을 살펴보면 5개의 큰 항목 중 학생의 권리는 △무료로 공립학교에서 교육받을 권리 △표현과 인격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정당한 절차에 대한 권리 △18세 이상 학생의 추가 권리 등이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의사를 표현할 자유 등을 열거한 우리나라의 학생인권조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뉴욕시의 권리장전 마지막 5절에서는 학생의 책임만을 다룬다. 5절 도입부에선 학생의 책임있는 행동이 전제로 권리장전에 명시된 권리를 취할 수 있고, 책임 중 일부를 위반할 경우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24개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에는 학교에 제 때 출석해야 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팍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학생의 권리와 의무 안내서'도 이와 유사하다. 안내서에 따르면 학생의 권리와 의무를 같은 무게로 명시하는 것은 물론 규칙은 학교 안팎, 온라인 교실 환경, 등하굣길에서도 적용되도록 했다. 특히 학부모는 이같은 안내서를 숙지하고 전달받았다는 서명지를 학기 초에 제출해야 한다. 학습을 방해하는 학생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상담, 자리변경, 방과 후 체류, 학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 일시적 박탈, 학급에서의 일시적 제외 등 교내 중재 지도방법 및 훈육 절차도 안내된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인권조례들은 학생의 본분과 사명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없다. 서울시의 경우 5장 51조 내용 중 제4조(책무) 부분에 '학생은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학교의 교육에 협력하고 학생의 참여 하에 정해진 학교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등 단 두줄만이 학생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경기도도 이와 유사하게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장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장으로 학생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2021년 '학생의 인권에 대한 제한은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교육의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 학생이 그 제정·개정에 참여한 학칙 등 학교 규정으로써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지자체와 교육청들도 학생의 의무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할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경기도는 4조(책무) 3항에 '학생 및 보호자는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더할 계획이다.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제8조 '학습에 관한 권리' 규정도 보완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도 학생 책무성을 중심으로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과 전북도교육청은 학생과 교원으로 보호 대상을 넓힌 '학교 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와 '전북교육인권조례'를 각각 시행 중이다. 추가적으로 교직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교권보호를 위한 별도 조례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교권보호조례가 있는 곳은 10곳뿐이었다. 서울과 부산, 대전, 세종, 충북, 경북 등 7개 교육청은 관련 조례가 없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조례가 없어도 법령에 따른 교권보호 대책은 가능하지만 조례가 있으면 정책 안정성, 교육청 관심, 사업 추진력 등이 더욱 제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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