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공학의자 하나가 900만원? "전국 18곳 백화점에 입점했죠"

배병욱 기자 2023. 8. 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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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호 에르고시스템 대표 "모두 말렸던 수백만원짜리 의자 선보여 10년째 성장 중"
한병호 에르고시스템 대표/사진제공=에르고시스템

1985년, 20대 초반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10여 년 뒤, 수입 가구 업체로는 국내에서 손꼽을 만큼 잘나갔다. 사옥도 올렸다. 그때 IMF가 찾아왔다. 780원 하던 환율이 1800원까지 치솟았다. 수입 업체엔 직격탄이다. 건물 올릴 때 차입한 것도 있었는데 이자는 2~3배로 뛰었다. 결국, 사옥은 경매로 날렸고 회사는 무너졌다. 당시 80억원 부도를 냈다.

어렵사리 재기했지만 몇 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차 몰아닥쳤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다. 수입 가구는 또다시 바닥을 찍었다. "국민 가구가 없을까." "모든 국민이 하나씩 쓸 수 있는 그런 가구 어디 없나." 지인들을 만날 때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이 회답한다. "우리 애가 이탈리아에 살 때, 10년 전부터 쓰는 의자가 있는데 말이야. 인체공학 의자인데 유럽에서는 허리에 좋은 의자로 유명하대."

캐물었다. 사진도 봤다. 희한했다. 노르웨이 인체공학 의자 'VARIER'(바리에르)란다. 알음알음해 보니 얼마 후 독일 쾰른에서 바리에르가 참가하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했다. 쾰른으로 날아갔다.

'저게 의자라고?' 바리에르를 처음 봤을 때 그 생경함은 잊을 수 없다. 20년 넘도록 가구업에 종사했지만 그동안 봐 왔던 디자인이 아니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격대도 의자 하나에 수백 만원.

"이게 과연 한국에서 팔릴까..."

뇌리에 물음표만 하나 달랑 띄운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 돌아온 뒤론 머릿속 물음표는 스러지고 '될끼'만 차올랐다. 계속 눈앞에 어른댔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일단 3500만원어치 샘플을 비행기로 공수했다. 지인들을 모아놓고 품평회를 열었다. 보는 사람마다 일성뿐이다.

"하지 마. 안 돼."
"안 하는 게 좋겠어."

심지어 가족들은 "이 제품이 팔리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을러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뚝기를 꺾을 순 없었다. 매장 귀퉁이에 샘플을 전시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종류별로 앉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디자인이 왜 다른지, 왜 비싼지, 그런데도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 파고들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낸 뒤 노르웨이 본사로 연락했다. "한국 총판을 하겠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우린 한국의 가구 시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였다. 직원들에게 "회사소개서와 사업계획서 등을 만들어 다시 시도하자"고 했다. 심혈을 기울였다. 그걸 보더니 한국으로 오겠다는 것이다. 방한 미팅 후 며칠쯤 지났을까. 노르웨이 본사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계약합시다." 인체공학 명품의자로 통하는 '바리에르'는 2010년 그렇게 국내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한병호 에르고시스템 대표의 얘기다. 앞서 서술한 바처럼 한 대표는 의자 하나가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기존 디자인과는 완연히 다른 '바리에르'를 10여 년 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당시 모두가 말렸지만 지금은 전국 18곳의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최근 10년간 플러스 성장 곡선만 그려 왔다. 올해 실적도 지난해보다 나을 전망이다.

"우리는 앉아서 허리를 다 망치고 있죠. 잠잘 때를 제외하곤 소파나 의자 등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의자가 중요한 까닭이죠."
의자 하나가 900만원?
'바리에르'는 노르웨이 유모차 '스토케'에서 분리된 브랜드다. 덴마크 정형외과 의사 '넬슨 만델'의 논문을 기초로,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피터 옵스빅'이 디자인했다. 피터 옵스빅은 스토케의 '트립트랩'을 만든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업무용 의자'를 '제2의 의복'으로 간주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불편함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바리에르가 비싼 데는 '디자인' '소재' '장인정신', 이렇게 3가지에서 기인합니다."

◇ 혁신적 디자인과 인체공학 기술의 융합

"저거 의자 맞아?" 바리에르의 특징은 단연 눈에 띄는 디자인이다. 한 대표는 "독창성과 창의성은 디자인 가치를 높인다"면서 "유명 디자이너의 참여 또한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리에르의 디자인에는 미학뿐 아니라 인체공학 기술이 녹아 있는 게 핵심입니다. 특히 앉은 자세에서 의자가 움직이는 게 특징이죠. 움직임 속에서 바른 자세(이상적인 척추만곡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장시간의 정적인 자세를 방지해 혈액 순환을 향상하고 근육 긴장을 줄여 주죠."

그는 "심미적 만족감과 최적의 편안함을 제공한다"며 "이를 위해 설계 및 R&D(연구·개발)에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는데, 이 모든 노력이 생산 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 친환경 고품질 소재(보증 기간 7~10년)

소재 또한 제품 가격을 결정 짓는 주요 요소다. 바리에르는 내구성, 수명, 미적 매력 등을 제공하는 친환경 재료를 선택한다. 나무·천·알루미늄·플라스틱 등 모든 소재의 보증 기간은 7~10년에 달한다. 보증 기간 내 문제 시 새 부속으로 무상 교체해 줄 만큼 품질에 자신한다.

"나무는 북유럽 소재를 씁니다. 성장 속도가 더딘 데다 오랜 시간 자연 건조해 매우 단단하죠. 이런 나무를 라미네이팅 프로세스 공법으로 24겹이나 겹칩니다. 이 때문에 변형이 없죠. 접착제도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요."

한 대표는 "페브릭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Camira(영국), Kvadrat(덴마크) 등의 친환경 직물을 쓴다"면서 "주로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소재"라고 했다.

이어 "가죽은 '아닐린 가죽'과 '세미 아닐린 가죽'만 고집하는 이탈리아 엘모(Elmo)의 것을 사용한다"며 "엘모 가죽 역시 세계적 명품 브랜드가 갖다 쓰는 소재"라고 말했다.

◇ 장인정신

바리에르는 세부 작업에 종종 장인의 손을 빌린다. 자동화 시대임에도 세계의 명차들이 일부 공정에 숙련된 장인을 투입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장인의 수작업엔 전문 지식이 녹아 있다. 제작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대표는 "숙련된 장인이 의자 프레임을 만들고 가죽이나 천을 세밀히 자르며 꿰매는 등 복잡한 목공 작업에 투입된다"면서 "최고 수준의 품질과 마감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것 또한 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장인의 손끝에서 나온 마무새에는 예술성과 독창성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한편, 에르고시스템이 국내 시장에 선보이는 인체공학 의자 브랜드는 바리에르 외에도 HAG(하그), CORE CHAIR(코어 체어), SYSTEM4(시스템포) 등이다. 모두 고가에 속한다. 특히 하그 사의 'CAPISCO'(카파스코)는 의사들 사이에서 '닥터 체어'로 알려져 있다.

완전히 누우면 무중력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인체공학 의자 '그라비티'(사진 왼쪽)와 다양한 방향과 자세로 앉을 수 있는 인체공학 의자 '익스트림'/사진제공=에르고시스템

배병욱 기자 acebb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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