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실 개입설·거짓 은폐설, 해병대 수사 난맥 밝히라
국방부가 지난달 수해 구조활동 중 숨진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의 수사 내용을 국방부 내 조사본부에서 재검토한 뒤 경찰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 발생 직후 수사한 뒤 국방부 장관 결재까지 받아 민간 경찰에 이첩한 사건을 굳이 되가져와 국방부가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방부는 경찰 이첩을 추진한 해병대 수사단장을 집단항명수괴죄로 보직해임까지 했다. 채 상병과 유족의 한을 풀어줘도 모자랄 판에 군은 도대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뭘 머뭇대고 시간을 끄는 것인가.
국방부는 9일 “(이첩 보고서에) 관련자들의 과실이 나열되어 있으나, 과실과 사망 간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명확한 설명이 없어 범죄 혐의 인정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관련자들’은 병사들을 구명조끼도 없이 구조활동에 투입한 책임이 있는 해병대 1사단장 이하 간부 8명을 의미한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과 국방부 얘기를 종합하면,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하고 법령에 따라 민간 경찰로 넘기겠다는 결재를 받았다. 이에 따라 8명은 지난 8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됐다. 하지만 군은 경찰에 달려가 사건 기록을 되가져왔고, 박 대령을 해임했다. 이 장관이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추가 명령을 내렸지만 이에 불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령은 이 장관의 추가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차관과 법무관리관이 구두 또는 문자메시지로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해병대 1사단장 책임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방부는 지난 8일 하급간부들에게 미칠 불이익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 사건을 수사·재판할 민간 경찰과 법원의 몫이다. 채 상병 사망에 책임이 있는 군 지휘부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이 일이 국방부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 장관의 최초 결재와 경찰 이첩 사이에 대통령실이 수사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하니 대통령실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닌가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채 상병이 숨진 지 꼭 3주일이 지났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억울하게 숨진 것도 모자라 그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조차 막혀 있는 기막힌 상황이다.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이 사건을 수사단의 원안 그대로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 계속 시간을 끌겠다면 국회 등 별도 기관의 조사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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