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강제입원" vs "인권 짓밟는 것"…'약'도 없는 극한대립
[편집자주] 인권은 보편적이지만 가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인권 논리를 앞세운 권리 남용에 공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공권력은 무장해제됐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약자를 보호할 균형잡힌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9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문턱이 높아지면서 강제 입원 비율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당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강제 입원 문턱의 완화'다. 가장 흔한 강제 입원인 보호입원의 경우 기존엔 보호의무자(직계혈족·배우자)가 신청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입원 소견만으로도 환자가 강제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뀐 개정법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보호의무자 2인이 모두 동의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게 됐다. 전문의 가운데 1명은 국공립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여야 한다.
기존엔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중증 정신질환이 있거나(입원 치료 필요성) ▶환자 자신 또는 타인의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성) 가운데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보호자가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건석 교수는 "이렇게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입원 치료가 가능한 건 세계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7년 5월 개정된 법에 따르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강제 입원(비자의적 입원)이 가능해졌다. 또 개정법 '정신질환'의 범위를 '망상·환각·사고·기분장애 등으로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환자'로 좁혀 정의했다.
결국 정신질환 증상이 심해도 타인을 해칠 위험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 환자 동의가 없으면 어떤 치료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건석 교수는 "법 개정 전엔 정신질환 증상 정도가 심각하면 당연히 자·타해 위해성이 높아지므로 자·타해 위해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환자여도 입원 치료해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법 개정 후엔 질환 정도가 심각해도 자·타해 위험성 없으면 환자 동의 없이는 치료를 강제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서은 교수는 "보호자가 환자를 어렵게 병원까지 데려와도 입원시키지 못하고 되돌려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당시 법 개정의 배경엔 환자의 '인권 보장'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사자(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가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고 입원 기간을 늘린 것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병원에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또 인권위는 해당 병원장에게도 "정신질환자의 신청 없이 '동의입원'이나 '보호 입원'이 이뤄지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인권 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다. 이건석 교수는 "이런 법체제 하에서는 자·타해 위험성이 현저하지 않을 경우 병원이 적극적인 방법을 취할 방법이 없다"며 "안인득 사건만 봐도 이 법 개정 이후인 2019년 4월, 그가 조현병을 장기간 치료받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졌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환자의 입원 기간도 제한된다. 환자를 2주 이상 입원시키려면 외부 전문의의 동의를 받도록 '2주 진단 입원' 및 '외부(국공립 및 지정병원) 추가 전문의 진단' 제도를 도입,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를 신설했다. 입원 후 2주 이내에 의사의 두 번째 진단이 있어야 2주 이상 입원할 수 있게 됐다. 1개월 이상 입원하려면 입원 후 1개월 이내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의 입원 적합 여부 통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처럼 입원 절차뿐 아니라 입원 연장도 까다로워지면서 강제 입원 치료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정신질환별, 환자 상태별 권장되는 입원 치료 기간은 다르지만 2~4주간 치료해야 효과적"이라면서도 "개정법에 따라 2주 이상 입원하기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할 만큼 까다로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신질환자 단체의 입장은 "강제 입원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맞섰다. 이들 단체는 '정신질환자'라는 용어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회장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정신장애 당사자' 또는 '당사자'라고 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타인을 해칠 위험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본부장은 "중증의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 가운데 '죽어라' 또는 '타인을 해치라'는 환청을 듣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9년 '묻지마 난동 및 살인'을 저지른 안인득은 조현병을, 이번 서현역 사건의 최원종은 분열성 성격장애를 각각 진단받았지만 치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한결 본부장은 "그들이 치료받았다면 증상을 더 완화할 수는 있었겠다"면서도 "질환과 관련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강제 입원 단계에서의 포박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본부장은 "사설 응급 수송기관에서 신발을 신은 채 집 안으로 들어와 환자에게 목줄·수갑을 채우고 끌고 나가는 경우도 적잖다"며 "당연히 본능적으로 자기방어 차원에서 저항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환자의 자·타해 위험성이 크다고 간주해 입원 정당성으로 둔갑시킨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뿐 아니라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휴대전화 압수, 면회·외출 금지 등으로 환자는 괴로운 데다, 언제 퇴원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입원 치료를 꺼리게 된다는 게 환자단체의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이에 분개하면 안정실이라는 격리 방에 강제로 끌려가 사지 결박당하기 일쑤다. 양팔·다리는 물론 목까지 줄로 채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침대 없는 방에서 20~30명이 누워 자거나, 환자 50명이 샤워기 단 두 대만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는 게 그의 호소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지난 4일,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란 법관의 결정에 따라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는 제도다. 정신질환자 입원은 본인 의사에 따른 자의적 입원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가 입원을 거부할 경우 비(非)자의적 입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한결 본부장은 "정부가 원하는 방식은 국제 규약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들"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과거부터 우리 정부에 "정신질환 환자들을 강제로 치료하지 말라"고 권고해왔다"며 "정신장애 당사자들에게 정부와 의료기관이 취하는 행동이 고문과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 정신질환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또는 블루터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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