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LK-99, `제2의 황우석 사태` 아니다

2023. 8. 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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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뭔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의 정체에 대해 국내 과학자들은 말끝을 흐리며 이같이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국내외에서 재현 실험 등의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물질임에는 틀림 없다는 여운을 남겼다.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대다수 과학자들은 LK-99가 초전도 특성을 가진 물질인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100% 초전도체라고 현재로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공통적으로 꺼냈다.

초전도체 검증 결과 여부를 떠나 21세기 들어 이처럼 새로운 과학적 발명에 이토록 전 세계가 떠들석하고, 가히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몰고 온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현대과학의 혁명기로, 과학적 발명과 발견이 많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제외하곤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그만큼 인류가 얼마나 세기적 발명의 탄생을 목말라 했는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지난달 22일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 개발에 대한 논문을 사전 공개 사이트(아카이브)에 올린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112년 전인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카멜린 온네스 교수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이후,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밤낮을 잊고 실험실을 지켜 왔지만 모두 허사로 끝났다.

이렇듯 '꿈의 물질'로 불리는 상온 초전도체 개발은 노벨상 '0순위'이자, 기존 기술패권 질서의 판을 한 순간에 뒤집어 놓을 파괴적 혁신기술로 추앙 받아왔다. 그토록 갈망하던 현대 과학계의 난제 중의 하나인 상온 초전도체 개발 소식이 한국에서 전해진 것이다.

그것도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 글로벌 대기업이 아닌 2008년 창업한 대학 실험실 기반 벤처기업이 깜짝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기업은 국내 상온·상압 초전도체 연구의 토대를 놓은 초전도 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고(故) 최동식 고려대 교수의 제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이들의 논문에 '고 최동식 교수를 기립니다'는 문장이 기재돼 있을 정도로, 대학 시절부터 20년 넘게 스승의 유훈을 받들어 상온 초전도체 개발을 이어 왔다.

LK-99는 이석배(L) 대표와 김지훈(K) 연구소장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정했고, LK-99를 발견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1999년을 기념해 '99'라고 붙여졌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1000회 이상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LK-99 개발에 성공했다고 했다.

LK-99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 주류 연구그룹들이 일을 제쳐놓고 재현 실험 등을 통한 검증에 힘을 쏟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이에 합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LK-99는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 많은 검증 결과가 나올수록 한국발 '상온 초전도체 탄생'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 프린스턴대는 LK-99가 자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면서 LK-99 검증 논란을 '제2의 황우석 사태'에 빗대어 깎아 내릴 듯 하다. 분명한 것은 논문을 고의로 조작한 황우석 사태와 LK-99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논문 데이터가 다소 부실해 보여도 데이터 조작 흔적은 없다는 게 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여기에 줄기세포 논란에 거짓 대응한 황우석과 달리 이들은 과학계의 검증에 열린 마음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커다란 차이다. 비록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물질이라는 점만 입증돼도 이들의 노력은 충분히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 결코 황우석 사태와 비교해 비난해선 안 될 것이다.

과학은 무수한 실패 과정을 거쳐 진보해 왔다. 그렇기에 과학은 솔직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LK-99가 신기루에 불과하더라도 우리의 작은 벤처가 촉발시킨 상온 초전도체 이슈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개발 경쟁을 가속화해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트리거가 될 것이라는 점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초전도체 개발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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