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가능성 키우는 가계부채…총선까지 부실 방치하면 안돼

한겨레 2023. 8. 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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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한 은행에 걸린 특례보금자리론 안내걸개 옆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안재환 | 인하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시장의 요구는 분명하다. 가계부채라는 거품을 걷어내지 말고, 오히려 거품을 더 높게 쌓아달라는 것이다. 새로운 부동산 매입자가 대출을 받아 시장에 진입해야 기존 부동산 투자자들이 차익을 실현하고 시장을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수 있다. 실제로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식의 부동산 규제 완화책이 시행되던 201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6%로, 빚을 내지 않은 모든 경제주체의 소득까지 동원한다면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103%다. 이는 우리 국민의 소득으로는 결코 갚을 수 없는 수준으로 우리 경제에 뇌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더욱 암울한 것은 소득, 소비, 생산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가계부채가 우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미 일본과 미국이 최악의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했다. 이러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 수단은 단 하나, 가계부채 규모를 줄이고 이미 발생한 부실을 국지적이지만 빠르게 도려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지속적인 가계부채 축소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상반기 39조 원의 특례보금자리론을 부동산 시장에 쏟아부었고, 7월부터는 역전세에 처한 갭투자자들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디에스알) 규제를 예외 적용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시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식시장과 달리 시세 조정 행위가 규율되지 않는 부동산 시장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호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근거로 일부 언론이 시세 반전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쏟아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결국 대출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부동산담보 대출이 급증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원하는 대로 거품 위에 거품을 얹은 것이다.

이제 파국의 가능성은 더 커졌다. 시장의 탐욕이 우리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에 정부는 비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는지, 혹은 빠르게 다가오는지 알 수는 없으나, 가계부채를 이대로 방치하면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제라도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채무상환 능력에 기반해 대출을 실행하는 디에스알 제도에 더 이상 예외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전세자금 대출에도 디에스알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디에스알 규제가 본격 시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기획재정부의 지속적인 디에스알 예외 적용 요구 때문이지만, 금융감독 당국은 이러한 경기부양 기조와 관계없이 강단 있게 건전성 감독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현재 은행들이 디에스알을 계산하면서 만기 50년을 적용하는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 차주 가운데 절대다수가 50년 동안 소득을 창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소득 기간을 가정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

금융회사에 대한 구조조정도 국지적이지만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최근 일부 금융기관이 연체 차주의 이자를 임의로 탕감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금융기관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출을 관리하면부실이 은폐되고, 마땅히 적립해야 할 충당금 적립 의무도 해태하게 된다. 이것은 회계적 분식 행위로 한계 금융기관 상당수가 이러한 행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은 전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과 한계 금융회사에 대해 적극적인 현장 점검과 검사로 부실을 들어내고 필요한 구조조정을 적기에 시행해야 한다. 2011년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그 좋은 예다.

이와 함께 금통위는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가 빈말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경제부처는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는 현 상황에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을 포기할 유인이 없다. 하지만금통위는 독립적인 통화정책 결정 기구로서 금리 인상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가계부채 축소를 위해 적극적 금리정책을 써야 한다.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직접 포함되지 않는 부동산 가격이 그 어떤 인플레이션 문제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지적 구조조정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유동성 확대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더구나 이러한 구조조정을 총선 등 정치 일정을 이유로 지체하면 부실이 금융권 전체로 확대돼 더 이상 손 쓸 수 없게 된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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