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의 여담] 이민 문제와 아프리카의 정체성
[김민형의 여담]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고대 이집트 인종 논란’은 유럽역사학에서 비교적 오래된 담론이다. 18세기와 19세기 근대 유럽의 형성 과정에서 인종 개념이 개발되던 시기에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된 고대 역사학이 토착화되면서 이 문제는 상당한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대부분 고대 역사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워 많은 추론과 상상이 일어나고,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어젠다가 사실 입증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고대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인이 ‘흑색 피부’를 가졌다고 했을 때 무엇을 의미했을까. 이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이 쓰였고 대형 조각물 스핑크스 얼굴의 형태에서부터 옛 벽화에 나오는 인물상의 해석까지 쟁점은 다양하다. 수천년 전 언어에서 특정한 형용사가 정확히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 수천 년 전 그려져 색이 다 희미해진 인물의 피부가 무슨 색인지 등을 결론내리는 과정에는 당연히 많은 선입견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20세기 말 고전학에서 활발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흑인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날에 의하면, 이집트 문명에 대한 근대 유럽인의 평판을 따라 고대 이집트인의 인종에 대한 인식도 대체로 바뀌었다. 가령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프리메이슨 공동체는 고대 이집트를 숭배하면서 이집트인을 백인으로 보았고, 낭만적 고전주의의 틀 속에서 그리스-로마가 이집트보다 우월했음을 강조하던 미술사학자들 같으면 이집트인들을 흑인으로 분류하곤 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2500년 동안 이집트 지역이 수많은 정복자를 경험했다는 사실도 당연히 전체적인 분류학을 어렵게 만든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되고 4세기에는 마케도니아 출신 프톨레메오스 왕조가 들어섰고, 기원전 30년에는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 후로도 역동적인 역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7세기에는 아랍문명에 편입됐고 16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오토만 제국의 식민지였다. 지역의 역사를 피상적으로만 살펴봐도 지금 얼마나 여러 종족의 후예들이 얽혀서 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는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흑인 원조설’이 이집트 내에서 상당히 강한 반박에 부닥치기도 한다. 최근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새로운 넷플릭스 영화에서 흑인 배우가 주인공역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집트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최근 재검하게 된 이유는 이집트의 정체성 문제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분류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고 많은 정치사회적 논란의 핵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관의 여러 전설 가운데 하나는 지중해 문명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깨끗하게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또 아프리카가 이슬람 문화권인 북아프리카와 ‘진짜 아프리카’인 사하라 남쪽으로 분명하게 나뉜다는 전설도 있다.
두번째 착상은 당연히 인종차별주의적 발상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올해 2월 튀니지아 대통령 카이스 사이에드가 남쪽으로부터의 이민 때문에 자기 나라의 인종이 바뀐다는 사실을 한탄하는 발언을 했고, 그 이후 튀니지아 안에서 흑인혐오 감정이 극도로 조장되고 있다. 튀니지아는 국민의 10~15%가 흑인으로 분류되지만 사이에드의 말은 나라의 아랍과 이슬람 정체성의 강한 표현으로 해석돼 흑인에 대한 폭력은 매일 증가하고 리비아와의 경계로 밀려난 난민들이 물과 양식의 부족으로 죽어 나가는 비극적 사태가 현재 벌어지고 있다.
튀니지아 역시 고대 페니키아에서 현대 프랑스까지 많은 문명의 시공간적 혼합을 계속해서 경험한 나라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의 정치적 변이는 거의 항상 유럽의 지정학적 입장에 의존한다. 북아프리카를 일종의 ‘이민 마개’로 사용하려는 전략은 유럽 여러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실행되고 유럽 내에서도 지중해 주위로 이민난이 특히 심각하다는 현실과 연결된다.
아득한 옛날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확신을 가지고 파악할 수 있을까?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당연히 이에 답할 수 없지만 역사와 전통의 해석이 현재의 평화와 분쟁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은 실로 무서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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