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중단된 약품을 배에 납품하라고 강요하는 해수부와 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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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의 약국들이 원양어선 등의 선박에 상비약으로 지정된 목록에 없는 약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형사 입건됐다.
약사법 제23조는 의약품 조제에 관해 약사에게 조제권을, 의사 등에게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처방 권한을 부여한다.
부산항에 입항한 선박은 비상 상비약을 실어야만 출항할 수 있어, 부산의 약사들은 약품 목록에서 이미 생산 중단된 물품은 성분이나 효능이 같거나 더 좋은 신약을 납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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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손형섭 | 경성대 법학과 교수
최근 부산의 약국들이 원양어선 등의 선박에 상비약으로 지정된 목록에 없는 약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형사 입건됐다. 약사법 제23조는 의약품 조제에 관해 약사에게 조제권을, 의사 등에게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처방 권한을 부여한다. 의료기관이 없거나 긴급한 경우에는 약사에게 의사의 처방전 없이 조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보건복지부 고시는 선박, 항공기 등의 특수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를, 해양수산부 고시는 선내에 취급하는 의약품의 분류와 비치 기준을 담고 있다.
이 해수부 고시 기준은 2022년에 시행한 것이지만 선내 취급 의약품의 비치 기준은 국제적으로 통용된 1974년 ‘선박 판매 물품 카테고리’를 참고해 작성한 것이다. 이 목록에는 이미 생산 중단된 약품이 많다. 50년이 지난 지금, 의학과 약학은 크게 발전해 5세대 항생제가 나왔고 일부 약품은 이보다 더 좋은 약품으로 대체됐다. 그런데 해양경찰청은 1974년 목록과 다른 품목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관련 약사들을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처방전에서 정한 약품이 없으면 의사와 약사가 상의해 대체 약품을 지급할 수 있다(약사법 제27조). 그러나 배의 상비약은 의사가 처방전을 쓸 수 없는 경우다. 1974년 목록을 현실에 맞게 최신 의약품으로 바꿔야 할 관련 부처는 “해당 품목 변경은 의사협회와 협의를 거쳐야 하기에 변경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더 효과적인 전문 지혈제가 있더라도 임의로 대체하지 말고 일반 지혈제(가루약)를 납품하라고 한다. 그러나 장기에 피가 흐르는 경우에 쓰는 전문 지혈제(주사제)를 사용해야 할 때, 일반 지혈제 가루약은 피부에 흐르는 피를 지혈할 수 있을 뿐이다. 정작 배에서 출혈 사고가 발생해 긴급 지혈할 수 없다면, 이후 약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제기될 수 있다. 장기 항해를 하는 선박의 경우, 선원·승조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박에 비치하는 상비약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산항에 입항한 선박은 비상 상비약을 실어야만 출항할 수 있어, 부산의 약사들은 약품 목록에서 이미 생산 중단된 물품은 성분이나 효능이 같거나 더 좋은 신약을 납품했다. 그 내용을 보건소에 사후 보고해 왔고, 보건소는 그동안 약품 거래에 대해 법적 문제로 삼지 않았다. 선박에는 선장에게 처방전 없이 약품을 납품할 수 있고, 납품받은 배의 선장은 약품의 품목과 상태를 확인 서명한다. 약사들은 합리적으로 업무를 수행했고 필요한 보고 의무도 다했다.
관련 공무원도 선원의 안전을 위해 합리적 행정 행위를 해야 한다. 해경은 “낡은 목록에 없는, 더 효과가 좋은 신약을 납품한 약사들에게 억울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규정에 따라 수사 및 송치를 의뢰할 뿐”이라고 한다. 선원의 건강을 생각하고 선박과의 계약에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 약사들이 낡은 목록과 의약에 대해 무지한 공무원에 의해 범죄자로 취급받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많은 배가 오간다. 정부는 우리 항구를 크루즈의 모항(출발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합리한 규정과 행정, 그리고 묻지마식 수사와 처벌을 진행하면 국내에 입항하는 선박들은 약품 등 기본적 물품을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채워야 할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해운업과 해상무역에 기여하고 선원의 생명과 안정을 고려하는 많은 사람이 합리적 업무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과 행정·수사 관행의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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