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때 가로등 쓰러뜨리는 주범인데…정당현수막 철거 ‘지지부진’ [태풍 ‘카눈’ 한반도 관통]

윤준호 2023. 8. 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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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에 사는 30대 남성 A씨는 지난 1월 길을 건너다 갑자기 변을 당했다.

태풍을 비롯한 강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이 넘어지는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현수막 지정게시대나 가로등, 전봇대 공사 시 현수막이 받는 풍압을 고려하는 기준이 없는 것으로 9일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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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전봇대 설치 ‘규제 사각’
풍압 기준도 없어 툭하면 사고
시민들 “쓰러질까 겁나” 불안감

경북 포항시에 사는 30대 남성 A씨는 지난 1월 길을 건너다 갑자기 변을 당했다. 가로등이 강풍에 쓰러져 그를 덮친 것이다. A씨는 머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돼 1개월가량 입원치료를 받았다. 당시 가로등에는 설 명절을 잘 보내라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 4개가 걸려 있었는데, 마침 불어닥친 태풍급 강풍이 현수막에 강한 힘을 가했고 이를 버티지 못하고 가로등이 쓰러졌다.

태풍을 비롯한 강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이 넘어지는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현수막 지정게시대나 가로등, 전봇대 공사 시 현수막이 받는 풍압을 고려하는 기준이 없는 것으로 9일 파악됐다.
진보당 광주시당 소속 당원들이 9일 제6호 태풍 '카눈' 상륙에 대비해 도심에 설치된 현수막을 자진철거하고 있다. 진보당 광주시당 제공
현수막이 묶여 있는 가로등이나 전봇대는 강한 힘을 받으면 쓰러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준상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현수막 설치 여부가 가로등 전도에 영향을 준다”며 “특히 빌딩이 많은 도심 지역에서는 빌딩풍(빌딩으로 인해 좁아진 바람길에서 가속된 바람)이 발생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우 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교수도 “비가 많이 와 토양이 물러 있거나 토사가 유출됐을 수 있는 상황에서 가로등이나 전봇대 지지력이 낮아져 풍압으로 흔들리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6호 태풍 카눈 상륙을 앞둔 이날 서울 곳곳에선 현수막 공공게시대에 다량의 현수막이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오후 2시쯤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변에는 현수막 5개가 걸린 지정게시대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됐다. 5m 이상 높이의 게시대를 가득 채운 현수막이 바람에 마구 흔들렸다. 과거 태풍이 휘몰아칠 때마다 다량의 현수막이 걸린 공공게시대가 주변 차량을 덮친 적이 있었다며 시민들은 걱정을 표했다. 인근 주민 양모(60)씨는 “이번 태풍이 세다는데 (게시대가) 신호등 바로 뒤에 있어서 길 건너는 데 쓰러질까 겁난다”고 토로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설치된 각종 현수막이 구청 관계자들에 의해 철거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가로등 전도 위험성 관련해 당국의 현수막 관리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5월 배포한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라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로등 1개당 현수막 2개를 초과해 설치하지 않도록 규정한 이 가이드라인이 무색하게 이날 서울 국회의사당 인근에는 가로등 1개에 현수막이 3개씩 걸려 있었다.

서울시도 아직은 가로등 설치 시 현수막으로 인해 가중되는 풍압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봇대를 관리하는 한국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가로등이 현수막을 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정당 현수막을 가로등과 전봇대에 합법적으로 걸 수 있는 상황에서 풍압 관련 규제를 사각지대에 두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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