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나무 틈이 빚은 '빛의 조각'···어둠에 잠긴 골목을 밝히다

한민구 기자 2023. 8. 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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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엮은 빌딩 구로동 '서편재'
구로시장 초입 우뚝 선 6층 높이 건축물
적삼목 특징 살려 소쿠리처럼 외관 꾸며
낮에는 햇빛 막고 밤엔 동네 조명탑 역할
사옥 용도 설계 걸맞게 스타트업 들어서
낙후된 지역 재생 유도하는 구심점으로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서편재. 천을 직조하듯 적삼목이 6층 규모의 철재 구조체를 휘감고 있다. 사진=신경섭 작가
서편재의 유리 커튼월을 통과해 적삼목 외피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 건축물이 마치 소쿠리 속 조명처럼 시장 입구를 밝히고 있다. 사진=신경섭 작가
[서울경제]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동네는 자연스레 낙후한다. 1960년대 형성된 서울 구로구 구로시장도 그중 하나다. 구로공단 직공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으며 왕성한 교류의 장이었던 동네는 1980년대 말 산업구조 변화로 공단 입주 기업들이 하나둘씩 떠나며 함께 쇠락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자리를 대신하며 시장 기능은 일부 유지됐지만 대중이 찾아올 이유를 잃으며 상권은 밤이면 다시 깜깜한 어둠에 잠기고는 했다.

어둡기만 했던 골목에 빛이 들기 시작한 건 밤 시간 조명 역할을 자처한 커다란 ‘나무 소쿠리’가 놓이면서다. 구로시장 초입에 위치한 ‘서편재(?編齋)’는 한자 그대로 나무를 엮은 집이라는 의미다. 6층 높이로 지어진 이 건물의 용도는 사옥 등 업무 시설이다. 늦은 시간까지 업무에 여념 없는 회사의 조명이 적삼목 루버 사이로 새어 나오며 건물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유동 인구가 감소하는 저녁 시간 동네를 밝히는 랜턴 역할을 한다.

서편재 외피를 장식한 적삼목 루버. 얇게 켜 휜 적삼목은 최소한의 인공처리만 거쳤다. 사진=신경섭 작가
굽이치는 적삼목이 하부 구조인 철골 기둥과 엮이며 심미적·구조적 안정성을 띠고 있다. 사진=신경섭 작가

◇굽이치는 적삼목 루버···조명 담은 소쿠리처럼=서편재의 외부 목재 차양은 소쿠리처럼 나무를 휘어 직조한 형식이다. 건물 유리 커튼월 외관을 목재로 감싼 디자인은 일대가 1970년대 편직물 시장이었던 점에 영향을 받았다. 폭 200㎜, 길이 3m의 적삼목들로 이뤄진 차양막은 마치 직물을 구성하듯 얽혀 이뤄진 창의적인 입면을 구성한다. 목재와 목재 사이 생긴 빈 공간 사이로는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새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한 결과물이다.

지음재아키텍츠가 외관에 적삼목을 사용한 것은 조형적 아름다움 외에도 자연재인 목재가 인간 정서에 가장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재성 대표는 “나무마다 독특한 특질을 갖고 있는데 이를 적절히 사용하면 심미성·경제성·시공성, 유지 보수 측면에서 공산품이 따라올 수 없는 가치들이 있다”며 “적삼목은 벌레나 습기 저항성이 뛰어나고 잘 휘는 성격이 있어 과거부터 외부 마감 재료로 널리 사용돼 이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목재는 오일스테인 도포만 거쳤다고 한다. 건축물이 박재돼 시대와 동떨어지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적삼목 루버는 기능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 담당도 한다. 건물의 실내 공간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체가 유리 커튼월로 이뤄져 있다. 이를 목재 루버로 감싸 낮 시간 실내 공간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셈이다. 이 대표는 “마치 개방된 테라스에서 일하는 듯한 이상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다”며 “기업을 위한 사옥 용도로 세심히 설계 시공된 건축”이라고 덧붙였다.

외피 사이로 들어온 자연광이 실내를 비추고 있다. 건물은 개방감 확보를 위해 강관 기둥을 최소 규격인 200×200㎜로 구성하고 250㎜의 무량판과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진=신경섭 작가
외피 사이로 들어온 자연광이 실내를 비추고 있다. 건물은 개방감 확보를 위해 강관 기둥을 최소 규격인 200×200㎜로 구성하고 250㎜의 무량판과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진=신경섭 작가

◇불 꺼진 시장에 스타트업 사옥 세워=그렇게 디자인된 건물이 자리 잡은 장소는 구로디지털단지의 1㎞ 북쪽에 위치한 구로시장 초입이다. 낮은 임대 수익으로 신축 개발 사업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정체된 곳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상업용 건축물은 건축주의 투자 수익 창출도 담보돼야 했다”며 “처음 현장 답사 때 동네가 투자지로 적합해 보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고 회고했다. 두 필지를 합필해 신축 건물로 개발한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건축을 통해 기업들이 사옥으로 삼고 싶게 짓는다면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계획안이 2015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했던 만큼 설계를 그대로 실현시키는 것도 숙제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음재가 택한 방식은 한 층당 최대 평수였던 50평을 40평으로 줄이는 대신 층수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부서별로 구분해 사용하기에 이 같은 구조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실내 천장과 창호면의 시각적 개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얇으면서 안정적인 철골 기둥을 구현하는 것도 필수였다. 이를 위해 강관 기둥을 최소 규격인 200×200㎜로 구성하는 대신 250㎜의 무량판과 결합해 발코니와 적삼목 루버를 지탱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대표는 “실내 공간의 효율성과 외부 전망의 개방성을 충족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구조 설계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며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 기둥 구조가 목재 루버의 철골 구조체와 군더더기 없이 연결될 수 있도록 디테일을 만들었던 과정은 정말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주안점을 둔 또 다른 부분은 발코니다. 각 층은 커튼월과 루버 사이에 위치한 발코니와 간이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건물 1층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발코니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나 다른 층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수직적으로 연결된 업무 공간 위로는 옥상 정원을 만들어 바람과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대표는 “사람에게 업무 중 휴식은 중요하다”며 “번거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층까지 내려가는 대신 간단히 발코니로 이동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배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이 상업 공간으로 계획된 만큼 지상으로 뜨락 정원(성큰가든)을 만들어 유동 인구의 접근성을 개선했다. 완공 이후 서편재는 그의 의도대로 한 스타트업 회사에 매각됐다.

적삼목 루버와 유리벽 사이로 구현된 발코니와 계단 사이로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신경섭 작가
적삼목 루버와 유리벽 사이로 구현된 발코니와 계단을 건물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신경섭 작가

◇도시재생 가능성의 초석을 놓다=엘리베이터도 없는 저층 벽돌 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형성된 마을에 서편재가 자리 잡은 것을 두고 혹자는 동네를 잘못 선택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낙후된 동네에 불필요한 노력을 들였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동네 분위기에 맞추기보다는 앞으로 동네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설계한 건축물”이라며 “서편재의 외관과 조명이 지역사회가 재생하는 구심점으로 기능하리라 기대하고 설계에 임했다”고 전했다.

구로시장 초입에 위치한 건축물이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해 대중에게 동네를 찾아올 이유를 제공한다면 유동 인구도 늘어나고 자연스레 새로운 산업들도 터를 잡아 일대가 재생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동네분들과 동네를 오가며 서편재를 바라보시는 분들이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구로시장 일대를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하며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건축물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제35회 서울특별시건축상 신축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서울 구로동의 근린생활시설 ‘서편재’. ‘작은 나무 서(?)’ ‘엮을 편(編)’으로 ‘나무가 엮어진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진=신경섭 작가
서울 구로동의 근린생활시설 ‘서편재’를 밤에 본 모습. 사진=신경섭 작가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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