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철칼럼] '사법부 정상화' 가로막는 세력들
巨野 대통령 인사권 막으려
기존 '임명 틀' 변경 시도
입법 가장한 반헌법적 폭거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신임 속에 평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법원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헨리 8세가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자신이 영국 교회 수장이라는 선언을 담은 '왕위계승법'을 만들자,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했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체포돼 런던탑에서 처형을 당했다. 헨리 8세의 부당한 입법과 결정에 맞서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열린 법 이야기'에서 지적했듯, 법치 수호를 위해 지배자 심기마저 거스른 그의 기개는 후대 법률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 종료(9월 24일)가 다가오면서 차기 사법부 수장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법조계에선 김용덕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12기),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14기), 오석준 대법관(19기)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법리에 밝고 균형 감각을 갖춘 데다 신망도 두터워 사법부를 정상화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다. 사법부 독립성이 가장 약했던 시기인 지난 6년의 '흑역사'를 바로잡고 사법부를 정초하는 데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문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현 사법부를 지속시키려는 더불어민주당의 몽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차기 대법원장 인선을 막기 위해 기존의 '임명 틀'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대법원장 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를 대법원에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 법안은 대통령이 각계 인사로 구성된 추천위가 뽑은 '후보 3인 이상' 중에서 1명을 지명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헌법에 '대법원장은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는데, 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장도 일반 대법관처럼 후보추천위를 구성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진 않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때는 자신들 입맛에 맞는 대법원장을 임명해 국정 독주 보호막으로 활용해놓고, 이제 와서 현 정권의 사법부 장악을 우려해 대통령 임명권에 족쇄를 채우려는 것은 표리부동한 행태다. 더구나 현 대법원장이 추천위원 11명 중 7명과 추천위원장까지 뽑도록 한 것은 곧 물러날 김 대법원장이 새 대법원장 선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려는 '알박기'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지금 이 시점에 '룰 변경'에 나선 것은 수사와 재판에 연루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든 차단하고 '전당대회 돈봉투' 비리에 휩싸인 의원들의 사법 처리와 재판도 유리하게 이끌려는 속셈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수 완력을 앞세워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인사권까지 손대려는 것은 입법을 가장한 반헌법적 폭거다. 의회 권력이라고 해서 사법 시스템을 훼손하고 헌법이 정한 권력 체제마저 무너뜨리는 권한까지 국민이 부여한 건 아니다. 민주당이 만약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가 마뜩지 않다면 1998년 정기승 후보자 낙마 때처럼 국회에서 투표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 될 일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다.
사법부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은 후보추천위 같은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라, 법치 근간인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려는 대법원장의 확고한 의지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판사의 독립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며 "침묵하거나 뒤로 물러나 있어선 안된다"고 했다. 사법부 수장이 정권에 순응하는 '권력 보조자' 대신, 법과 양심의 최후 보루로서 행정·입법 권력에 결연히 맞서는 균형추 역할을 할 때 민주적 기본 질서와 법치주의가 확립되고 사법부도 바로 설 수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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