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여성에 바치는 춤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8. 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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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여자야 여자야'
24~2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서
안은미 "새 문명 연 여성 기려"
'여자야 여자야' 초연을 앞두고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공연연습장에서 연습 중인 무용수들. 국립현대무용단

"이름을 다 열거할 순 없지만 하나씩 파격을 행한 위대한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정댄스."

신작 '여자야 여자야' 초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8일 서울 서초구 국립예술단체공연연습장에서 만난 안무가 안은미는 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식민 침략에 시달렸던 시기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안 안무가는 "신여성은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열고 발을 들였던 이들"이라며 "그분들의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은 아마 전혀 다른 사회가 됐을 수도 있다"고 표현했다.

그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거시기 모놀로그' 등을 통해 노년·여성·장애인·아저씨 등 이 시대 인류의 다양한 몸과 경험에 집중했던 안 안무가가 이번엔 근대 개항기로 시선을 돌렸다. 일상복도 직접 디자인해 입는 그답게 이번에도 '모던 걸' 의상을 재해석해 선보일 예정이다. 음악은 이날치 밴드의 장영규 감독이 맡았다.

"내 안에는 늘 '한국의 여성'이란 주제가 흐른다"는 그이지만,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며 마주한 당대 개개인의 삶에선 새삼 치열함을 느꼈다고 한다. "먼 시대 얘기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얼마 전의 이야기예요. 그 시절 여성운동을 하면서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신 분도 있죠. 이분들의 치열한 사랑으로 사회를 이어가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이어가야 할 치열함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어요. 새로운 세대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답을 찾는 데 멈춤이 없어야죠."

극에는 6명씩 총 12명의 남녀 무용수가 등장하는데, 여성 무용수들의 어깨가 무겁다. "제 작품에선 남성도 치마를 입는 등 구분이 없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이번 극에서 여성 무용수 6명은 공연시간 60분 내내 무대를 떠나지 않습니다. 무용수들에겐 육체적으로도 엄청난 도전이에요. 인간 생명력의 끝, 한계에 관한 질문도 들어 있는 셈이죠."

실제로 이날 연습장에선 약 20분간 극 중반부 시연을 볼 수 있었는데, 무용수들은 바닥이 울릴 정도로 격렬하게 무대를 뛰어다녔다. 남녀 할 것 없이 유관순 언니를 떠오르게 하는 흰 저고리, 검정 치마의 생활한복 차림으로 길고 두꺼운 파이프를 들고 다니며 총성이 난무하는 무대 위에서 서로를 혹은 어딘가를 겨눴다. 안 안무가는 "누가 누구를 쏘고 죽이는지, 왜 죽여야 하는지도 몰랐던 혼돈의 시대를 상징한다. 그런 근대의 이야기들이 엉켜 있다"고 소개했다. 이내 무용수들은 빨강, 파랑, 초록 등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뛰어다닌다. 그러다 곡이 바뀌고 여성 무용수들이 한데 모여 작은 날갯짓을 해 보였다. 이들은 한 걸음씩 내디디면서 옷을 벗어던진다.

안 안무가는 연습실에서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아직 의상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몸짓에선 매혹적인 느낌과 해방감, 결연함이 느껴졌다. 안 안무가는 "무대에선 무용수들이 옷을 다 벗으면 제가 디자인한 수영복을 입고 있을 것"이라며 "근대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을 유혹했던 광고와 금지되던 것들이 풀리고 가능해지는 모습 등 시대 풍자도 담았다"고 했다. 이 밖에 부채와 확성기 등을 활용한 퍼포먼스 등 서사는 없지만 시대상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향연이다. 24~2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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