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포퓰리즘이 살아남는 방식

2023. 8. 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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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대리하는 사람은
포퓰리즘으로 주인을 유혹
더 강력한 감시와 책임을

대다수 사람이 A라는 결과를 원하는데, 이를 위해 X와 Y라는 수단이 제안됐다고 하자. X와 Y를 시행하기 위한 비용은 엇비슷하다. X는 시간이 걸리고 혜택이 균일하지 않지만(예를 들어 누구는 A+를 얻고 누구는 A-를 얻는다) 꽤 큰 가능성으로 대다수 사람에게 평균적으로 A라는 결과를 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된다. 반면에 Y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내지만 궁극적으로 A보다 못한 A'(짝퉁 A)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부작용이나 다른 측면의 손실도 생긴다. 즉, 직접인 비용은 둘이 비슷해도, 실제 사회적 비용은 Y가 더 큰데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돈을 모아서 직접 선택하라고 하면 X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돈을 모으되 직접 선택할 수는 없고 대신 그들이 선출한 대리인이 결정하도록 하면 과연 그 대리인이 X를 선택할까? 이런 상황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주식회사와 같은 기업도 흔히 직면하게 되는 주인과 대리인 문제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이 장마철 곰팡이처럼 퍼지기 쉽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누구나 더 많은 데이터를 무상으로 혹은 싸게 사용하기를 원한다(A). 이를 위해 여러 지자체에서 공공 WiFi를 제공한다(X 및 Y). 실제로 많은 지자체가 민간 통신사업자에게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면서 공공 WiFi 사업 참여를 유도해왔다(수단 X). 이 경우 지역의 상당 부분을 커버하는 공공 WiFi 구축은 더디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투자비는 적게 들고 운영비도 민간이 실질적으로 일부를 책임지게 돼 예산은 절감된다. 선거를 앞둔 지자체장(대리인)이 조급한 마음에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하면서 시민의 감성에 호소하고 보편적 데이터 사용권이라는 그럴듯한 어젠다를 내세워(포퓰리즘 개입) 공공 WiFi 사업을 직접 강행한다(수단 Y). 여기에는 시민의 세금이 더 많이 투입되고, 이는 그 세금이 필요한 다른 부문의 보이지 않는 기회손실로 이어진다. 운영비도 더 많이 소요되는데 지자체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민간 사업자보다 효율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세상인의 결제수수료 부담을 줄인다는 선해 보이는 명분에서 출발한 각종 '지자체 페이' 사업도 위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들은 지금 자취를 감췄거나 대폭 축소됐거나 다시 민간에 위탁된 경우가 대다수다. 역사나 정체성도 모호한 지방 축제나 상징물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놓고 뒷감당을 못 하는 지자체 소식도 들린다.

포퓰리즘에 관한 경제학과 사회학의 최근 연구는 과거에는 진보주의와 포퓰리즘 간의 상관관계를 제시했지만, 오늘날에는 트럼프, 보우소나루,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우파 포퓰리즘 정치도 많다고 한다. 당시에는 포퓰리스트로 불렸던 진보주의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화를 이끈 것으로 재해석되는 사례도 많다. 철도의 공기업화, 누진소득세 도입, 노동권 확대 등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진보주의 포퓰리스트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대리인 입장에서 그들의 주장을 펼친 것이 아니라 (주인도 아닌) 노예의 상황에서 절박함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트럼프 등의 우파 포퓰리스트는 대통령이라는 대리인의 입장에 있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보면서, 대의민주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시민과 국민이라는 주인을 대리하는 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더 강력하고 엄격한 원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를 대리하는 경영자와 기업가에게 적용되는 수준의 감사, 중대재해처벌, ESG와 같은 압력과 책임감을 정부와 지자체도 배워야 한다.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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