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전기료 부담되고 갈 곳 없어"...국립중앙도서관 찾는 은퇴한 노인들[현장르포]

김동규 2023. 8. 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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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립중앙도서관 4층 열람실에는 더위를 피하며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만원을 이뤘다./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전기료 너무 올라 에어컨 켜기도 부담이죠. 카페 가면 1만원 훌쩍 나가니까, 우린 도서관이 피서지에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김모씨(64)는 요즘 아내와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다. 기술사로서 기업에서 임원까지 달았던 그이지만 올해 초 퇴직한 후 갈 곳이 마땅하지 않다. 주중 오후 6시 이전까지는 아내와 함께 단둘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낮 기온 35도를 육밖하는 날에는 집 안에 있는 것이 고역이다. 김씨는 올해에도 '도서관 피서'를 선택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은 나같이 은퇴한 사람들에겐 부담 없이 즐길 공간"이라며 "수입이 없는 입장에서 돈이 거의 안 들고, 실내 온도 역시 쾌적하다"고 말했다.

9일 낮 12시께 찾은 국립중앙도서관 열람실과 휴게실엔 은퇴한 노령층이 많았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들고 있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의 평균온도는 24~25도 수준이다. 언제든 재입장해도 돈이 들지 않으니 카페와는 차이가 크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사실상 노령층 '피서지' 역할까지 하게 된 이유다.

도심 속 '피서지' 국립중앙도서관
기업에서 인사담당 임원으로 활동하고 중소기업 전문경영인까지 엮임했다는 최모씨(75세). 그는 "집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서 국립중앙도서관까지 편도로 약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매주 2~3회씩은 이곳에 있다"면서 "굳이 도서관에 자주 가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수입이 줄어든 데 비해 전기료는 늘어나다 보니 냉방기 틀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기료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5차례에 걸쳐 ㎾h당 40.4원 올랐다. 가정용 전기를 기준으로 올해 여름에도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전력(427㎾h)을 사용할 경우, 20.8% 더 높은 전기료를 내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 2층 휴게실에서 땀을 식히고 있던 전직 대학교 교원 서모씨(60대)는 "날씨가 좋으면 밖에 돌아다니겠지만, 지금과 같이 날씨가 얄궂은 날에는 어김없이 이곳에 온다"며 "나는 서래마을에 사는데 나무로 둘러싸인 선선한 산능선을 지나 국립중앙도서관을 오면 더위도 식힐 수 있어서 피서지로서 제격이다"고 말했다.

구내식당에서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노령층이 몰리는 이유다.

최씨는 "이곳에 오면 5000원만 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입장료가 없으니 언제든 밖에 산책하러 갔다 다시 들어올 수 있다"면서 "집 근처 카페에 가려면 자리 때문에 한 잔에 5000원인 정도인 커피를 사먹어야 하고, 점심이나 산책 등을 위해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면 또다시 5000원짜리 커피를 자릿세로 사 먹어야 하니 내 나이엔 그것도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무임승차 이용해 더위 피하는 노령층도 많아
도서관이 노령층 피서지로 변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은퇴 노인들의 경제상황이 주원인이지만, 노인들이 할 수 있는 마땅한 활동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포동에 거주하는 양모씨는 "취미생활을 하려면 돈이 드는데 은퇴한 사람들은 자식까지 결혼시키고 나면 쓸 재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있을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공공장소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퇴 노령층이 무임승차제도를 이용해 지하철역이나 전동차 안에서 더위를 피하는 사례는 지난해보다 늘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1∼25일 지하철 1∼8호선을 이용한 65세 이상 노령층은 146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93만명)보다 약 75만명 많아졌다.

일선에서 물러난 70대 사업가 하모씨는 "요즘 일주일에 2~3번 정도 마을버스를 타고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며 "일주일에 1~2번 정도 아들에게 물려준 회사로 가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지 은퇴를 하고 나니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앞선 김씨 역시 "기술사로서 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냈지만, 퇴직하고 나니 정작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도 배운 것이 공부이다 보니 피서지로 국립중앙도서관을 택한 것"이라며 "노인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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