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붉은 장미 두 송이
우리 아파트 길모퉁이 화단에 봄이면 붉은 장미 두 송이가 핀다. 나는 그 장미를 볼 때마다 2년 전 이사를 간 우리 아파트의 예의 바른 남매를 생각한다. 나는 40여 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줄곧 살고 있는 원주민이다. 13층 아파트의 11층에 사는데 그 남매의 집은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둔 앞집의 위층인 12층이었다. 우리 라인의 26가구 중 원주민은 이제 4가구 정도만 남았다. 세월이 가고 주민도 바뀌면서 삶의 풍경도 풍습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처음 입주 때만 해도 한 집에 할아버지·할머니, 아들·딸 부부와 손주들이 오손도손 꽃밭처럼 살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젊은 부부와 초·중·고등학생 자녀들만 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집값이 폭등하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에 이어 초·중·고등학생 자녀까지도 찾아보기 힘든 중장년층 부부들만의 세대로 변화를 겪고 있다. 며칠 전 경비분이 우리 라인에도 초등학생이 생겼다고 새로 이사 온 댁의 얘기를 했다.
내가 이사 간 남매를 처음 만난 것은 30여 년 전쯤이다. 동생은 유모차를 타고 누나는 아가였을 때 이사를 왔다. 세월이 가고 누나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오고 동생은 군대까지 마친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오가며 만날 때면 학교 얘기며 군대 얘기, 아르바이트 얘기도 했던 가까운 이웃으로 정이 들었다.
내가 그 누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사 가기 한 달 전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였다. 오랜만에 반가웠다. 농담 아닌 진담을 했다. "어! 더 예뻐졌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예뻐지지?" 하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 대신 "푸~" 하고 누나의 웃음이 터졌다. 나도 웃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이 웃었다. 그때 누나의 웃음이 화단의 '꽃망울 터지는 소리' 같아 메모를 했다. '나 오늘 꽃망울 터지는 소리 들었네/ 푸~ 하고 터져버린 그녀 웃음꽃이었네…'. 그리고 며칠 뒤 아파트 현관에서 남매의 엄마를 만났다. 엄마도 미모의 멋진 분이었다. 이사를 간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였다. 그 후 봄이 오고 장미꽃 필 때면 나는 그 남매를 생각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어느 집이 이사를 오면 떡을 돌리고 인사를 다녔다. 이제, 옛말이고 지나버린 풍습이다. 매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려도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 현실이다. '이웃사촌'이 아니라 완벽한 '타인'이다. 문명의 발전으로 생활은 편리해져도 부대끼며 사는 사람의 정은 날로 메마르고 사회는 거칠어졌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스마트폰에 시선이 꽂혀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리 양보는 잊힌 계절이다.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선생님의 교권마저 무너지고, 자신도 누구의 부모이고 어느 분의 자녀일 텐데 난데없는 투표권이니 남은 미래가 어떻고 하는 뜻 모를 이야기로 가뜩이나 뜨거운 8월을 더욱 들끓게 하고 있다. 이성과 인성을 일깨우는 교육 정책이 시급하다. 세월이 가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 그런 이웃, 그런 사회, 그런 정치가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야겠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나라를 위하여!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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